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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혹, 이란 핵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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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뒤에도 이 같은 성과와 충성심을 인정받아 상관인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과 함께 자리를 지켜왔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였다가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중용된 이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외엔 이들 정도다.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미국인’의 하나로 손꼽히는 그의 이번 방한은 그러나 북한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대북 제재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한·미 간에 워낙 공조가 잘돼, 따로 논의할 게 없었던 까닭이다. 그의 핵심 주제는 이란 문제였다.

이란은 현재 오바마 행정부가 떠안은 최대의 외교 과제다. 지난달 이란 대통령은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으로 향하는 ‘문지방’ 격인 농도 20%의 핵원료를 제조했다고 선언했다. 다음 달과 5월에 잇따라 열릴 핵안보 정상회의와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에서 ‘핵 없는 세상’의 비전을 구체화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대형 산유국이자 중동의 강자인 이란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중인 미국이 또다시 군사행동을 하기엔 버거운 상대다. 외교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미국은 이란에 대한 각종 제재에 한국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한국으로선 슬기로운 외교가 절실하다. 미국은 평양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대북제재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파트너다. 대(對)이란 제재에 가능한 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이 이란과 맺고 있는 경제적 이해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란은 한국의 최대 원유 수입원 국가 중 하나다. 한국 기업들의 이란 진출로 거둬들이는 돈도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이란에 걸려 있는 우리 국익을 지키면서도, 북핵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가 막아야 하는 이란의 핵개발 저지를 도와야 하는 과제가 우리 정부에 떨어져 있다. 다행히 이번 글레이저·멀 팀의 방한에서 한국과 미국은 ‘윈윈 외교’의 좋은 모범을 만들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대(對)이란 제재를 그동안 충실히 이행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분명히 했고, 미국은 이를 평가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한·미가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계속한다면 북핵과 마찬가지로 이란 핵문제에서도 모범적인 공조 사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