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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원주민 저항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원주민들의 저항, 이것이 21세기 초반 중남미 사회 갈등의 핵으로 등장할 것이다. "

올해 초에 나온 미국 정보국(CIA)의 동향 보고서의 분석 중 일부다. 멕시코 등 중남미 전역에 사는 인디오 인구는 약 3천만명을 웃돈다. 이 3천만 인구가 지역의 안정을 뒤흔드는 폭풍의 핵으로 부상한 것이다.

멕시코의 리오 그란데 강에서 칠레 최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에 이르기까지 인디오들은 잃어버린 그들의 땅과 종족적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5백년간의 침묵을 깨고 저항하고 있다.

16세기의 정복과 식민화 3백년, 독립 이후 공화국 질서 아래서의 머슴살이 2백년. 이 5백년간 피압박 종족이 겪은 설움을 기념하기 위해 이들은 1992년 (콜럼버스의) '발견 5백주년' 을 '침입 5백주년' 이라고 재명명했다.

이들은 빼앗긴 선조들의 땅과 존엄성을 되찾겠다고 다짐하고는 곳곳에서 정복자들의 동상을 끌어 내렸다.

80년대의 개방과 신자유주의 개혁에 따른 개발 붐으로 다시 한번 '정복' 을 당하고 있는 원주민들은 '생존권' 과 '자치' 를 외치며 정부와 지방 호족, 경우에 따라서는 다국적기업에 맞서 실력행사를 한다.

브라질의 경우 열대우림을 대량으로 파괴하는, '유사이래 최대 규모의 종획운동(인클로저)' 을 자행하는 목장주들에 맞서 인권운동가 치코 멘데스는 원주민의 권익을 옹호하며 이들을 조직하다가 결국 암살당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들이 겪는 참상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멕시코.과테말라.볼리비아.콜롬비아의 원주민들은 정부를 향해 '토지' 와 '존엄성' 을 요구하며 계속 대치 중이다. 발전소 건설과 벌목으로 생활공간이 축소되고 있는 칠레 마푸체 원주민들도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와서 가장 폭발적인 운동 양상을 보이고 있는 에콰도르 원주민연맹(Conaie)은 마우드 전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과 달러화 사용 정책에 반대한 동원과 시위로 결국 대통령을 하야시키기도 했다.

페루의 아야쿠초 원주민들은 '센데로 루미노스' 란 좌익 게릴라 운동체를 매개로 해 지역의 저발전과 빈곤에 대한 불만을 폭력과 테러로 표출하기도 했다. 중남미 대륙 전역이 각성된 원주민 운동으로 들끓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스와 치아파스 농민게릴라 운동은 바로 이러한 거대한 흐름의 한 지류이자, 이들의 요구사항과 갈망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요약본이라 하겠다.

이런 대항에 서구의 지성인들은 열광한다. 지난 3월 사파티스타의 멕시코 시티 입성에 함께했던 마르코스의 열성적 지지자 명단을 보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주세 사마라구(이상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카를로스 몬시바이스(멕시코 문단의 거장)와 같은 문필가는 마르코스가 쏟아내는 언어와 담론의 황홀함과 그 힘에 감탄한다. 사미 나이르.알랭 투렌와 같은 비판적 프랑스 지성들은 그에게서 잃어버린 '68 세대' 의 향수를 느끼고, '반세계화' 의 상징으로 격상시키고자 한다.

할리우드의 촉수도 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거장 올리버 스톤과 로버트 레드퍼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려고 계획 중인데, 이를 통해 소비 사회(미국)의 야만성을 고발하려 할 것이다.

빌리 더 키드.알 카포네와 같은 '깡패' 외엔 인물이 드문 미국 문명은 항상 국경 너머 멕시코에서 자기 얼굴을 비춰보는 의적들을 찾았다. 1930년대 '비바 사파타' 를 만든 엘리아 카잔이 그랬고, 10년대에 '멕시코의 로빈 후드' 판초 비야를 현지촬영했던 할리우드의 뮤추얼 영화사가 그랬다.

이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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