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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세탁방지법 합의는 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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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는 23일 지난해 말부터 논란을 벌여온 돈세탁방지법에 대한 합의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대 쟁점인 불법 정치자금 조사를 어렵게 만들어 놓아 시비는 계속될 전망이다.

◇ 법안 골격 바꾸게 한 정치자금=당초의 법안 제정 이유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2단계 외환자유화 조치 때문. 불법자금의 국내외 유출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정치자금 포함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됐다. 시민단체 등이 부패구조 수술을 위해 정치자금이 이 법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정치적 악용 우려가 있다" 고 반대했고, 계좌추적이 달가울 리 없는 여당 의원들도 동조했다.

줄다리기 끝에 여야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계좌추적권을 아예 없애기로 했다. 돈세탁 의심이 가는 금융계좌의 연결계좌 추적을 가능토록 했던 제10조 3항을 삭제한 것. 이 경우 A은행 혐의거래가 통보돼도 FIU는 혐의 당사자의 B, C은행 거래정보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여야는 대신 FIU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세탁 의심이 가는 금융거래자를 통보받으면 인적사항 등의 자료분석만을 통해 정치자금의 경우 계좌추적권을 가진 선관위에 넘기도록 했다.

그러나 선거법은 선관위가 정치자금을 조사할 경우 해당 정치인에게 소명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어 당사자에게 사전통보하는 셈이 된다. 여야는 또 FIU 직원이 선관위에 보내야 할 정보를 검찰에 보냈을 때 이 직원을 처벌하는 규정도 추가했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의 '담합' 성격이 짙다" 고 말했다.

◇ 재정경제부.시민단체의 반발 거셀 듯=재경부 관계자는 "연결 계좌추적권 삭제로 금융기관이 통보한 돈세탁 행위가 어느 범죄에 해당하는지 조사할 수 없게 됐다" 며 "정치자금에 대해 선관위에 통보하고 해당 정치인에게 소명기회를 주는 것은 조사의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고 말했다.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는 "돈세탁방지법이 당리당략 때문에 빈껍데기로 전락했다" 고 비난했다. 민주당 이상수(李相洙)총무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날 밤 "필요할 경우 FIU가 검찰에 요구, 영장을 발부받은 뒤 계좌추적을 할 수 있도록 수정안을 다시 제출해보겠다" 고 말했다.

같은당 천정배(千正培)의원은 "FIU가 범죄자금의 돈세탁을 추적하기 위해 설치되는 만큼 연결계좌에 관한 정보도 수집해야 한다" 며 합의안에 반발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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