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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낭랑 18세' 세계 클래식음악계 경악시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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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1999년 8월 미시간 호반. 라비니아 페스티벌 개막 축하공연에서 크리스토퍼 에센바흐가 지휘하는 시카고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었던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55)가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며 자리에 누웠다.

공연 이틀전 통보를 받고 출연한 '대타(代打)' 는 당시 16세의 중국계 피아니스트 랑랑(郎朗)(http://www.langlang.com)이었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잔디밭을 가득 메운 1만2천명의 관객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스타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은 신동 모차르트가 활약했던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80년대 혜성처럼 나타난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이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라비니아 페스티벌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중국의 '낭랑 18세' 가 세계 악단의 화제다.

중국 선양(瀋陽)에서 얼후(箏)연주자의 외동 아들로 태어나 세살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아홉살때 베이징(北京)중앙음악원에 입학, 그랜드 피아노를 생전 처음 만져보았다. 지금은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서 명교수 게리 그라프먼을 사사 중.

95년 랑랑에게 우승의 영광을 안겨준 제2회 영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결승에서 그가 연주한 쇼팽 협주곡 연주실황을 비디오로 접한 후 입학허가를 내준 것. 입학 전형에서 오디션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커티스 음악원에서 예외규정을 둘 정도로 그라프먼의 충격은 컸다.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는 랑랑은 폭넓은 레퍼토리를 빠른 속도로 익히면서 세계 굴지의 매니지먼트사인 IMG 소속 아티스트로 연간 80회 이상의 연주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돈밖에 모르는 매니저들이 어릴 때 스카우트해 실컷 무대에 세운 다음 훌쩍 커버리고 나면 나몰라라 팽개치는 또하나의 '신동' 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미 거장의 풍모에 가까운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텔락 레이블(http://www.telarc.com)로 국내 출시된 그의 데뷔 앨범은 지난해 8월 탱글우드 오자와홀에서의 실황 녹음. 하이든의 '소나타 E장조' ,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제2번' , 브람스의 '6개의 소품' , 차이코프스키의 '녹턴' 등 소나타와 소품을 적절히 안배한 레퍼토리에서 그의 자신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음표 하나 하나의 표정을 살리면서도 어디론가 돌진해 가는 음악적 추진력으로 생동감과 깊이.개성을 두루 갖춘 해석을 선보인다. 영국 'BBC 뮤직 매거진' 은 음반리뷰에서 "호로비츠의 테크닉과 섬세함을 갖췄다" 며 연주와 녹음에 만점인 별 다섯 개를 주었다.

두번째 음반으로는,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지휘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을 녹음할 계획이다.

장영주(주빈 메타).장한나(로스트로포비치).헬렌 황(쿠르트 마주어)이 그랬듯 랑랑은 러시아 태생의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62)의 총애와 후원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는 26일 테미르카노프 지휘의 볼티모어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데뷔한다.

올 가을 시즌엔 볼프강 자발리시(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크리스토퍼 에센바흐(뉴욕필.북독일방송교향악단)와 협연하며, 유리 테미르카노프 지휘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함께하는 일본 순회공연도 잡혀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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