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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사채업자 조사 현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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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서민을 울리는 악덕 고리(高利)금융업에 대한 수술에 나섰다. 국세청은 20일 오후 전국의 고리사채업자 1백55명을 상대로 일제 세무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이미 탈세혐의를 확보한 사채업자의 명단을 검찰에 통보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정부와 여당은 당정회의를 열어 서민금융 이용자 보호대책을 확정했다. 사회문제화한 일부 사채업자의 지나친 고금리 영업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서민층의 삶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 국세청 세무조사 현장〓2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에서 대기하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 5명은 C빌딩의 한 사무실을 덮쳤다. 사무실에 있던 사채업자 金모(63)씨의 신분을 확인한 뒤 조사반은 세무조사 통지서를 읽었다(통지서에는 金씨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집.아파트.상가 등 22개 부동산 물건이 열거돼 있었다).

'조사를 위해 장부를 가져가겠다' 는 서류(예치승낙서)에 金씨가 서명하기를 거부하는 동안 金씨의 개인 세무사가 달려왔다. 30분 뒤 체념한 金씨가 서명하자 조사반은 서랍.캐비닛은 물론 휴지통과 金씨 부인의 핸드백까지 뒤졌다.

金씨는 "아파트가 많지만 모두 국민주택 규모이고 상가.사무실도 문닫은 게 많아 별 것 아니다. 세금은 꼬박꼬박 냈다" 고 주장했다.

사무장의 책상에서 각종 약속어음.가계수표.건물등본.인감증명서.채권확인증.채권포기서.위임장.계산서(영수증용).부동산임의경매승낙서 등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금방 갚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돈을 빌렸다가 사채업자의 술수에 휘말려 집과 재산을 날리는 피해 과정을 이들 서류는 잘 보여주었다.

李모 조사반장은 "내사 결과 金씨는 22건의 아파트.주택을 사실상 소유하고 있지만 간이과세 특례자로 돼 있다" 며 "이들 재산 가운데 사채로 잡은 담보를 경매하거나 포기각서를 쓰게 하는 등의 수법으로 자신의 손에 넣은 것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피겠다" 고 말했다.

◇ 서민금융 이용자 보호 대책〓사채업자의 초고금리와 신용카드사 연체이자의 상한선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같은 대책이 서민층의 돈줄 마련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용불량자 구제가 도덕적 해이로 연결돼 또 다른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위적으로 사채금리를 제한할 경우 이면계약 등 편법이 나타나리란 예상도 있다.

당정이 생각하는 사채금리의 최고 한도는 연 30~40%.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5%대)의 6~7배 수준이다. 하지만 사채시장에선 이 금리가 낮다고 주장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사채업을 하는 朴모(47)씨는 "사채를 쓰는 사람은 은행 카드론도 안되고 친지에게도 외면당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신용카드 연체금리가 연 30%에 육박하는 점과 위험도를 감안하면 현재 검토되는 30~40%의 금리로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 고 주장했다.

금리상한선을 일정금액 이하의 대출에 적용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재정경제부 이종구 금융정책국장은 "최고 이자율을 적용하는 여신금액은 5백만원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결정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사채업자가 이 금액을 초과하는 금액을 대출받도록 하고 최고 이자율을 넘는 금리를 적용할 수도 있다.

송상훈.이효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서민금융 이용자 보호대책 주요 내용>

◇ 부당한 채권 추심, 고리대금 행위 단속 강화(시행 중)

- 금융감독원에 사금융 피해 신고센터, 국세청에 고리 사채업자 신고창구 설치

- 검찰.경찰.국세청.공정위.금감원 합동 단속

◇ 신용 불량자 제도 개선

▶선의의 신용 불량자 기록을 은행연합회에서 일괄 삭제(5월 1일)

- 4월 말 현재 연체금을 갚은 자나 향후 1개월 안에 갚는 자

▶연체금 상환에 따른 신용 불량 기록 삭제 대상 확대

- 카드1백만원 이하, 대출금 5백만원 이하→카드 2백만원 이하, 대출금 1천만원 이하

▶카드 30만원 이하, 대출금 1백만원 이하 연체자는 6개월 동안 신용 불량 등록 유예(하반기)

▶신용 불량 기록 보존기간 단축

- 현행 3단계 1~3년→2단계 1~2년

◇ 신용카드 발급 기준 강화(4월 21일)

- 결제능력 입증될 때만 카드 발급하도록 카드회사 감독

◇ 카드사 과도한 연체 이자율 제재 강화(시행 중)

<자료 :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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