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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가진 출판사들 동의·허락 받은 뒤 법정스님 글 인터넷서 누구나 보게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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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7일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의 유언장 전문을 공개했다. 스님은 ‘유산에 대한 유언장’ ‘상좌들에게 보내는 유언장’ 두 가지를 남겼다. 스님은 유언장에서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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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저서는 최근 서점에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스님의 열반을 전후한 저서 품절 사태에 대해 독자 여러분께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스님의 유지를 존중해 스님의 책을 출판해온 모든 출판사에 더 이상 출판하지 말아줄 것을 정중히 부탁 드린다”고 요청했다. 아울러 “스님의 글을 언제든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스님의 책을 온라인상에서 무상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그러나 이는 쉽게 풀릴 대목이 아니다. 출판권을 갖고 있는 개별 출판사의 동의, 혹은 허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칫 저작권 침해 논란이 일 수 있다. ‘맑고 향기롭게’ 관계자는 “시간을 갖고 출판사들과 회합을 하기로 했다. 스님의 유지와 출판사의 입장을 고려해 협의토록 하겠다. 협의가 마무리되면 스님의 책을 누구나 인터넷에서 무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유언이 공개됨에 따라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휩쓸고 있는 스님의 저서가 어떻게 처리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출판사들은 “기본적으로 스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이에 따르겠지만, 절차상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고세규 문학의 숲 대표는 “아직 공식 요청은 없었지만 스님의 뜻이 그렇다면 따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성구 샘터 대표도 “‘맑고 향기롭게’ 측과 협의해 절판하겠다”고 밝혔다. 도의적으로 스님의 뜻을 어기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고석 도서출판 이레 대표는 “절판을 하더라도 ‘맑고 향기롭게’ 측과 정식으로 만나야 한다. 절차나 준비 과정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절판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맑고 향기롭게’ 측이 스님의 저작권을 승계한다고 해도 출판사에 따라 길게는 8~9년 남은 계약기간을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영철 변호사(KCL법무법인)는 “계약 내용은 출판사와 상속인(맑고 향기롭게)이 물려받게 된다. 이번 유언 공개는 계약해지의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적으로 출판사가 당장 절판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이은주·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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