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모스크바기 냉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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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러시아는 나토가 안고 있는 골칫거리다. 공산권 붕괴 이후 나토의 두 축인 유럽과 미국이 대 러시아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유럽국가 내부에서도 러시아의 안보위협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영국은 여전히 러시아가 잠재적 적국이라는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를 잠재적 파트너로 대접해 포용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도 EU와 나토에 적극적으로 문호개방과 협력을 강조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스톡홀롬 유럽연합 정상회담에 사상 처음으로 참석, 유럽국가들과 러시아의 긴밀해진 모습을 과시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완고하다. 미국은 여전히 러시아를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특히 NMD체제 및 나토의 확대를 추진하는 미국의 입장에선 러시아가 눈엣가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가 "불량국가에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미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고 비판, 러시아와 대화유지에 나섰던 클린턴 행정부의 공든탑을 일거에 무너뜨려버렸다. 미국으로서는 동맹의 한 축인 유럽이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럽의 상황은 바뀌었다. 경제통합에 이어 정치통합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는 EU는 동방확대를 위해 러시아의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프랑스가 "체첸사태는 프랑스와 러시아 관계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고 한발 빼는 것도 유럽 안보에 러시아가 불가결하다는 인식으로 풀이된다. 냉전이래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독일도 "유럽이 미국의 개입없이 러시아와 안보문제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도 이에 발맞춰 유럽신속대응군 창설을 지지하고 '유럽미사일방위체제' 구축을 제안하는 등 유럽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NMD 강행에 맞서 미국과 유럽의 분열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 대한 시각차를 좁히지 못하는 한 향후 15년 내에 미국과 유럽의 동맹관계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는 사실로 맞아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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