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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자원봉사 마일리지’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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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필자는 내무부의 관료주의가 마음에 걸렸지만 종합행정에다 ‘힘 있는’ 부처이고, 국회 내무위가 법안을 심의하고 있었던 만큼 ‘잘 해 주겠지’ 하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그해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정부는 이듬해 국무회의에서 자원봉사 주무 부처를 내무부로 결정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갑자기 당시 국회의 일을 회고하는 것은 최근 국내 자원봉사 운동에 예상치 않은 변화가 많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내무부, 현재의 행정안전부가 있다.

내무부는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 힘 있게 일했다. 1996년 일부 지자체에 교부금을 보내 자원봉사센터 설립 작업을 시작하다 1997년부터 경기 북부지역의 3년에 걸친 홍수를 계기로 자원봉사센터를 확대 설립했다. 2002년 말엔 248개 지자체에 종합자원봉사센터가 세워졌다. 6개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은 자원봉사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고, 2008년부터 범부처가 참여하는 자원봉사 국가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그 기본계획에 따라 10개 가까운 정부 부처,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는 해마다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한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 실시해야 한다. 이런 일은 옛 내무부, 현재의 행안부가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 자원봉사 운동은 행안부·복지부 등의 제도적 지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많은 사람이 자원봉사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 등은 요즈음 “제도화의 폐해가 이렇게 큰가”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한다.

지역 자원봉사센터 상당수는 관변조직화돼 지자체장의 정치도구가 되고 있고, 자원봉사에 인센티브가 없으면 참여하지 않으려는 등 순수성을 잃고 있다. 많은 청소년이 자원봉사로 점수 따기에 바쁘고, 센터에 등록한 주민 중에는 식당·빵집 등 자원봉사 가맹점 할인쿠폰에 더 신경을 쓰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센터에 예산을 주면서 “지난해 대비 자원봉사자 몇 % 증가, 행사 몇 회 증가”라는 양적 평가기준을 우선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행안부는 민간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전국의 센터와 인증 기관·단체들을 통해 ‘자원봉사 마일리지’라는 제도를 전국에 획일적으로 실시하겠다고 한다. 품앗이 같은 제도인데 국민의 봉사시간을 통합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원봉사 활동은 더 양적·형식적으로 흐르게 되고, 봉사자들은 인증기관만을 찾게 돼 어린이들의 동네 경로당 방문 등 비공식적인 봉사활동은 위축될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세상에 없다. 옛 내무부가 점점 더 ‘획일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창호 남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