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교육 바꿔야 한다] 中. 불 보듯 뻔한 부실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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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뒷걸음질 치는 것은 수업시간만이 아니다. 역사 수업시간의 축소는 당연히 교육 내용의 부실로 연결된다. 잘못된 제도가 악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있으나마나 한 근.현대사=이미 지적했듯이(본지 12일자 14면) 앞으로 고등학교 '근.현대사' 가 선택과목으로 바뀌면 국사교육은 절름발이나 다름없다. 이거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선택을 권하면 된다지만, 일선 교사들은 그게 먹힐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입시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마당에 공부하기 쉬운 다른 선택과목을 제쳐두고 굳이 까다로운 '근.현대사' 를 택할 학생이나 학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결국 '근.현대사' 는 있으나마나 한 과목이 될 수 밖에 없다. 교육과정에서의 이같은 소외가 가져올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서울 석관고 신병철 교사는 "지금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가까운 과거를 외면한 채 고.중세사를 아무리 배워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고 말했다. 이래서는 일본의 날조된 역사관에 당당히 맞설 동량(棟梁)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근.현대사 외면풍조는 역사학계의 해묵은 '사상논쟁' 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정태헌 교수는 "우리의 역사교육은 아직도 냉전체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며 "근대 독립운동사에서 좌파들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현대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 등에서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보니 차라리 외면하는 쪽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고 말했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친일세력의 존재 또한 걸림돌로 꼽힌다.

▶세계사는 없다〓국사교육이 이 정도라면 세계사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중학교에서는 아예 사회 교과서의 일부로 포함돼 있다. 가르치는 데 특별한 전공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국사 과목과 마찬가지인데, 실제로 현장에서는 비전공자들이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등학교도 이와 비슷한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가 미칠 악영향 또한 국사 못지 않다. 세계사란 큰 흐름 속에서 한국사를 보는 눈을 가려버림으로써 편협한 국수주의자만 길러내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이런 우려는 특히 우리의 근.현대사와 관련해서 볼 때 더욱 심각하다.

경기도 수원 농생명과학고 정용택(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교사는 "그러지 않아도 우리 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은 지나치게 일본관계사 중심이라는 지적이 많다" 며 "자칫하면 일본의 이른바 '근대화론' 혹은 '진출논리' 에 이용당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올바른 세계사 교육이 동시에 이뤄져야 국사의 본모습도 균형있게 관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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