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보직해임된 국·실장 현업 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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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금융감독원이 새로운 인사 실험을 시작했다.

16일 국·실장급 인사를 하면서 보직에서 물러난 국·실장을 현업부서로 발령을 내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금감원은 정년(58세)보다 4년이 앞선 만 54세가 되는 국·실장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보직 해임을 하고 인력개발실 밑의 교수실로 배치했다. 이들은 교수로 재직하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융회사 감사로 옮기는 게 관행이었다. 해마다 금융회사 정기주총 때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이번에 인사에서 보직을 내놓은 국·실장 13명은 앞으로 3개월간 연수를 받은 뒤 국장의 자문에 응하는 연구위원이 되거나, 소비자보호업무나 검사 지원업무를 맡게 된다. 금감원은 연수가 끝나는 3개월 후엔 기존 교수실 조직도 폐지하기로 했다. 새 인사 제도에 따라 국·실장 승진은 어려워졌다. 올해 국장 승진자는 9명, 실장에 새로 보임된 사람은 5명으로 전년의(국장 18명, 실장 11명)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금감원이 만 54세 일괄 보직 해임 관행을 없앤 것은 올해부터 나이를 기준으로 근로자를 차별하지 못하는 고용상연령차별금지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금융회사 감사 등으로 재취업하는 인원을 줄이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퇴직자가 줄어드는 만큼 금융회사 감사로 가려는 사람도 많이 감소할 것이라는 게 금감원 측의 설명이다. 이런 기대대로 금감원 출신이 금융회사 감사로 가는 게 줄어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보직 해임된 국·실장들이 금감원에 남아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재취업에 나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쪽에서도 금감원과의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해 퇴직자들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실험이 성공하려면 전임 국·실장들이 새 보직에 제대로 적응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자리를 내놓은 국·실장들은 일선으로 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 금감원 노조도 이들의 현업 배치에 반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후배 국·실장이 선배들에게 과감하게 일을 맡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업무 분위기만 해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감원 김우진 노조위원장은 “전임 국·실장들의 현업 배치는 실효성이 없다”며 “차라리 각급 학교나 금융회사 직원을 상대로 한 금융 교육 등을 맡기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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