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주민들 달러 써도 이달 초부터 단속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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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한 지 15일로 100일을 갓 넘어섰다. 그 사이 북한 당국이 사용을 전면 금지했던 외화는 일반 주민들까지 널리 사용하게 됐다. 국영상점으로 국한됐던 상품거래는 예전처럼 장마당(소규모 시장)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물가는 화폐개혁 이전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양상이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북한 접경지역인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 주민 등을 만나본 결과 물가를 잡고 시장을 억제하면서 계획경제를 강화하려던 북한 당국의 화폐개혁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물자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장을 없애면서 물가는 요동쳤고, 이 때문에 주민들의 생필품 구입은 이전보다 더 어려워지는 등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 외화 사용 묵인=평양에 살면서 단둥을 오가며 생필품을 수입하는 북한 화교 서모(32)씨는 “3월 초부터 일반 주민들의 외화 사용을 당국이 단속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당초 외국인에게도 외화 사용을 금지했지만 1월부터는 호텔 등 제한된 곳에서 외국인에 한해 외화 사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내·외국인의 외화 사용에 대한 규제가 풀린 셈이다. 이에 따라 평양 주민들이 감춰둔 외화를 들고 시장에 나와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화폐개혁 직후 사실상 문을 닫다시피 했던 종합시장과 장마당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장에서 물건 거래가 다시 활발해지면서 물가와 환율이 폭등하고 있다고 서씨는 전했다. 예컨대 지난 4일 미화 1달러가 800원이었지만 4일 뒤인 8일 2000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북한의 조선무역은행이 지난달 초 공시한 환율은 1달러당 98원이었다. 같은 기간 쌀값도 1㎏에 500원에서 800원으로 올랐다.

◆북한 생필품 수입 급감=지난 9일 오후 단둥 세관 창고에는 빈 10~20t 트럭 40여 대가 서 있었다. 단둥에서 북한과 교역하는 조선족 김모(47) 사장은 지난해 11월 말까지 이런 장면은 거의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화폐개혁으로 외화 사용이 금지되면서 단둥 지역의 무역상들이 물건값을 떼일 것을 우려해 상품수출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물건값이 큰 폭으로 오르는 것도 이유라고 했다.

역시 북한과의 교역을 주로 해온 화교 조모(35)씨는 “북한 당국이 수입하는 타일 등 건축자재와 승용차, 공장 설비와 식량이 간간이 거래될 뿐 일반 생필품 교역은 거의 중단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 쪽에서 금·은 정광(금과 은이 포함된 원석)과 구리 등을 가지고 와 식량 등과 맞바꾸는 일은 여전하다”고 귀띔했다.

◆화폐 다시 바꿔준다는 소문 무성=화폐개혁 당시 구화폐 교환 한도는 가구당 10만원이었다.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4만원을 넘지 않는 만큼 2개월 이상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란 판단하에 정한 한도였다고 한다. 그 사이 화폐개혁의 후유증이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가구가 100만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고 수천만원까지 보유한 가구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 당국이 주민 불만 무마 차원에서 추가로 화폐 교환을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조씨는 전했다.

단둥=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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