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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고 좋은 평가 받고 싶은 문학적 욕망 놓아버리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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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시인의 옷을 벗고 승려의 길을 택한 차창룡(왼쪽)·이진영 시인. [조용철 기자]

시인 차창룡(44) 씨가 출가(出家)했다. 출세간(出世間)의 공부를 위해서다. 12일 혼자 살던 서울 흑석동 단칸방을 정리한 차씨는 봉천동 어머니 집에서 속세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석촌동 불광사를 찾아 은사인 지홍 스님에게 인사를 드린 뒤 행자 생활을 하게 될 합천 해인사로 곧장 내려갔다. 삭도칼로 삭발을 하고 갈색 행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차씨는 1989년 문예지 ‘문학과사회’로 등단했다. 그간 네 권의 시집을 문학과지성사·창비·민음사 등에서 펴냈다.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여러 대학에 출강했다. 최근에는 추계예술대 문창과 전임교수직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 행보는 세속적 성공에 맞춰진 것 같았다. 때문에 차씨의 출가는 뜻밖이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놀랍다는 반응이다.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에 2006년 결성 때부터 관여하는 등 불교에 깊이 빠져는 있었지만 설마 출가까지 하랴 싶었던 것이다.

12일 오후 서울 인사동에서 차씨를 만났다. 차씨는 나란히 출가를 결심한 도반(道伴) 이진영(52) 시인과 함께 나타났다. 차씨는 조계종으로, 결혼해 가족이 있고 나이가 찬 이씨는 태고종으로 각각 출가한다. 차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이씨와 출가를 상의해 왔다. 차씨에게 출가 이유부터 물었다.

“20년 넘게 하다 보니 문학적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게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쓰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욕망은 사실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집착하게 되고 괴로움을 유발한다는 면에서 권력욕이나 재물욕과 다를 게 없다. 헌데 문학적 욕망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해 왔다. 물론 평생 문학에 매달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기 그런 욕망마저 한 번 놓아버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씨는 특히 “인도 모임을 통해 인도를 여행하게 된 게 출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는 마치 인간 사회의 모든 모순을 총체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신분 계급·경제력·교육 수준 등의 양극 차가 엄청나 보였다는 것이다. “살기 어렵다 보니 성자가 많이 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면서도 정작 돈과 여권이 들어 있는 복대를 챙기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 내가 집착이 심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차씨는 기회가 닿으면 인도 민중을 돕고 그들을 불교에 귀의시키는 활동을 할 생각이다.

차씨는 인터뷰 내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인생의 근원적 불행을 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각오하는 진지함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긴 여행을 떠나는 결단과 비슷한 일”인 만큼 “특별할 게 없다”고 했다. “신문 기사 나갈 테니 이제 번복할 수도 없게 됐다”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사실 그는 이미 시에서 심각한 일을 심각하지 않게 풀어내는 면모를 보여왔다. 2008년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에 실린 시 ‘여자의 짝은 결국 여자였다’를 보면 출근길 아내와 싸우고 한강물로 뛰어들고 싶다던 화자가 불교적 명상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는 “시를 접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비중은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어떤 선시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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