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왜 인터넷만 탓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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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살.엽기.원조교제.음란물 등으로 청소년이 병들어가고 있다. 청소년문제가 제기되면서 이러한 문제 발단의 원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인터넷이다.

음란 사이트 운영자의 80%가 청소년이란 통계도 있다. 폭탄제조 사이트를 운영하는 중3년생, 음란CD판매로 월 수백만원의 수입을 올리다 잡힌 고등학생, 채팅을 통해 원조교제를 한 청소년, 자살사이트 검색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 게시판에 저속한 성적 표현을 올리는 초등학생, 음란물에 접촉하는 초등학생 등 일련의 청소년문제가 인터넷과 관련되어진다.

인터넷이 청소년들에게 반사회적 행동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인식 때문에 요즘 우리 사회에서 소수 기성세대가 마치 인터넷 등장 전엔 음란물.자살.원조교제 등이 없었던 것처럼 단속을 외치고 있다.

청소년의 문화공간이 되고 있는 인터넷이 이런 기성세대의 잣대로 마구 휘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모든 기성세대가 다 그렇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많은 기성세대는 컴퓨터를 잘 모를 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이 어떤지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정상적인 열정을 갖고 인터넷 공간을 오가는 청소년들은 채팅방에서 욕설이 나오면 빠져나온다.

채팅하다 실생활에서 만나자고 요청을 받으면 거절할 줄 안다. 음란CD를 판다는 e-메일을 받으면 삭제해 버린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음란 사이트, 충격적인 엽기사이트, 충동적인 자살사이트가 있는 줄 알지만 비정상적으로 탐닉하지는 않는다.

불법이거나 유해한 정보를 발견하면 신고할 줄도 안다. 정보의 늪지대, 음란의 바다 속에서도 잘 대처해 나가는 대다수 청소년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감시하는 기성세대에 대해 분노한다.

그리고 인터넷 문화를 스스로 잘 만들어 가고 있는데 무시당하는 것 같아 허탈감에 빠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터넷만 탓하면서 건전한 청소년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기 때문이다.

대신 최근 발생한 일련의 인터넷 관련 사건을 통해 우리는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에게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보자.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청소년은 특정의 기성세대에게 배운 것을 인터넷을 이용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돈벌이가 되면 무엇이나 해도 된다는 태도,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선 무감각한 반응, 남을 배려하는 데 무심한 의식 등…. 이런 현실에서 오히려 인터넷 이용에 적응이 덜 된 청소년이 보이는 반사회적 행동의 원인을 인터넷 탓으로만 돌린다면 이는 정상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웃음거리만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많은 기성세대가 인터넷 공간 정화를 위해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왕 강력한 의지를 보인 마당에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의 의지를 분명히 알려주자. 인터넷 공간의 안전을 위해 기성세대의 잘못된 의식을 과감히 수정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악용하는 악덕 사업자와 청소년에게 비정상적인 탐닉을 유도하는 불량 행위자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청소년을 돈으로 유혹하는 미성숙한 성인 역시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함으로써 더 이상 비윤리적 행위, 잘못된 상술이 통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상적인 정열을 갖고 인터넷을 오가는 청소년은 대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또한 청소년 이용자들에게 인터넷을 이용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고, 이를 확산시켜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물질만능보다는 성실과 행복이 중요하고, 불법행위는 단호하게 처벌되며, 성실성은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치관을 청소년들이 갖도록 해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준비가 덜 된 청소년들에게는 아직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도록 안내하면서 청소년들의 놀이공간이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우리 기성세대는 올바른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이경화 <사이버성폭력피해신고센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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