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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볼 수 없을 때까지 어르신들 웃겨드릴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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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앞이 안 보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외로운 노인들의 아들이 되겠습니다."

27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 무대에 선 개그맨 김민(51.본명 김종진)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객석에 모인 3000여명의 노인은 감사와 격려의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무료 효도잔치는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김씨의 바람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모아줘 성사됐다.

1980년 TBC(동양방송) 공채 2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김씨는 김형곤.장두석.이성미씨 등 동기 개그맨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방송통폐합 이후 일거리를 찾지 못해 밤무대를 전전하며 힘겹게 살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2년 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왼쪽 눈의 시력도 갈수록 떨어져 내년께엔 완전히 실명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빠져 있기는커녕 얼마 안 되는 수입을 쪼개 매주 한두 차례 서울.경기 지역 양로원을 돌며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위로공연을 펼쳐왔다. 고종사촌형인 가수 고영준(고 고복수씨의 아들)씨는 "김민이 부모님을 일찍 여읜 처지라 주변에서 접하는 불우한 노인들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다"고 전했다.

김씨의 주요 레퍼토리는 고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들의 목소리를 성대모사 하는 것. 27일 공연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 "남북 노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효도잔치를 열면 좋겠다"고 해 갈채를 받았다.

서울 월계동 15평짜리 전셋집에서 아들.딸을 혼자 키우며 살고 있는 김씨는 "노인들이 내 공연을 보고 즐거워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면서 "앞으로 시민단체 활빈단과 함께 독거 노인과 고아들을 맺어주는 운동도 벌일 것"이라고 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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