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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과서 우향우] "문부성 검정이 왜곡 부추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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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 교과서 검정제도가 일본에서 도마에 올랐다.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 결과 역사왜곡.침략전쟁 미화 등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의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통과된 데다 문부과학성이 검정과정에서 여러 출판사에 내용 수정을 요구하는 등 개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문부과학성은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내년도 초.중학교 사회.공민교과서에 대해 "학생들이 국기.국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도록 하라" 는 내용의 검정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중학교 교과서 5개씩이 '의무 존중' 을 강조하는 쪽으로 수정해 검정을 통과했다.

◇ 검정제도=1947년 제정된 학교교육법에 따라 처음 도입됐다.

일제시대 군국주의 교육을 강요한 국정교과서제도에 대한 반성에서다.

민간 출판사가 교과서를 만들면 문부과학성이 일정기준에 따라 심사하고 학교는 심사를 통과한 여러 교과서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된다.

문부과학성은 검정제도에 대해 "교과서검정심의회가 검정기준에 따라 심사하므로 정부가 정치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 고 강조해 왔다.

중국.한국 정부가 역사 왜곡으로 물의를 일으킨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대해 항의할 때도 문부과학성이 대응논리로 내세운 것이 '검정제도의 독립성' 이었다.

◇ 개입 논란=외교.일본 국내 정치상황 및 분위기에 따라 문부과학성이 출판사의 제작단계 및 심사과정에서 '주문 형식' 으로 사실상 지시한다는 지적이 많다.

문부과학성은 1982년 고교사회교과서에서 '침략' 이란 단어를 쓰지 않도록 출판사에 지시했다가 한국.중국 정부가 거세게 반발하자 교과서 제작시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한다는 '근린제국 조항' 을 검정기준에 넣기도 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문부과학상은 97년 문부성 장관일 때 국회에서 "역사교과서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역사를 너무 부정적으로 싣고 있다" 며 "집필단계부터 편집자가 균형감각을 갖도록 하고 채택 단계에서 개선할 수 있는지를 심의회에서 협의할 것"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 저널리스트 와니 유키오(和仁廉夫)는 "문부성이 99년 도쿄(東京)서적 등 일부 출판사에 대해 일본 근대사 내용을 순화할 것을 주문했다" 고 밝히고 있다.

일본 출판노조.역사교육 관계자들은 "교과서 검정제도는 검정을 빙자한 정부검열" 이라고 주장한다. 검정이 문부과학성 직원인 조사관과 장관 자문기구인 심의회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정부의 학습지도 요령은 고시(告示)에 불과한데도 검정에서 탈락하면 4년을 기다려야 하는 출판사의 약점을 이용,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교과서 내용에 개입한다" 고 지적한다.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87) 도쿄교육대 교수가 65년 검정제도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교과서 검정은 검열을 금지한 헌법 위반이며 교육에 대한 행정의 부당한 개입을 금지한 교육기본법 위반" 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민주당.사민당.공산당 등 야당도 검정제도의 폐지 또는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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