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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과서 우향우] 1. 역사시계 되돌린 일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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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 우파학자 단체의 교과서가 통과된 데다 기존 교과서의 침략 부분 등에 관한 기술이 줄어 일본과 한국.중국 등 주변국간의 외교적 마찰 등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일본서적 교과서에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 추가되고 도쿄(東京)서적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1998년 일본 국회 연설문이 일부 실리는 등 보완된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침략역사 기술이 상당히 후퇴했다는 평이다.

◇ 의미〓 '일본중심 역사관' 을 표방하는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새역모)의 교과서가 내년부터 공식 무대에 등장하게 돼 교육현장의 '우경화'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 교과서의 경우 검정과정에서 상당히 수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침략전쟁을 부인한 당초 신청본의 기조는 고쳐지지 않았다. 일제의 가해행위는 축소하고 전쟁 피해자로서의 입장만 부각한 데다 동남아시아 침략을 식민지해방에 기여한 것으로 미화했다.

일본 중학생이 잘못된 역사관을 가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새역모' 는 내년에 전체 중학교의 10%가 자신들의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우익단체들이 이번에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함에 따라 사회적으로도 목소리를 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침략에 대한 일본 정부의 역사적 시각도 상당히 후퇴해 일본 정부.정치권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할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 배경〓장기 경기침체 및 정치 공백에 대한 실망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 을 잃은 일본 국민 사이에 민족주의에 대한 향수가 늘고 있다. 일본 정치권.정부 내에서도 이를 부추기며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는 추세다. 일본 법원조차 종군위안부.강제징용 희생자의 배상청구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외교소식통은 "최근 일본의 정치상황.국민정서를 볼 때 '새역모' 교과서의 통과는 불가피했을 것" 이라고 풀이한다. 곧 물러날 모리 요시로(森喜朗)정권이 한국.중국과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수' 를 택했다는 해석도 있다.

사실상 문부과학성이 주도했다는 지적도 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문부과학상은 98년 당시 문부상일 때 국회에서 "현행 역사교과서는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역사를 부정적으로 적고 있다" 고 기존 교과서를 공격한 바 있다.

그는 이후에도 "검정은 집필자의 사상이 아니라 내용을 갖고 한다" 고 말하는 등 '새역모' 측을 지원했다. 그런데도 문부과학성은 "내년부터 역사교육시간이 주 4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돼 한국 침략역사 교육부분이 줄었고, 종군위안부 문제는 중학생에게 가르치기가 부적절하기 때문" 이라고 해명한다.

◇ 외교 마찰〓일본과 한.중간에는 한동안 먹구름이 드리울 전망이다. 교과서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유감의 뜻을 전했고 필요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역사인식 공세는 불 보듯 뻔하다. 중국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새역모' 교과서를 불합격시킬 것을 촉구해왔다.

또 "일본 정부가 통과시킬 경우 심각한 외교마찰이 발생하고 이는 모두 일본 정부의 책임" 이라고 강조해 외교적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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