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가 안은미씨 '은하철도000'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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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980년대 TV만화로 국내에 소개된 '은하철도999' . 주인공 철이와 함께 우주공간을 여행하는 메텔은 언제나 검은 원피스에 길게 늘어뜨린 금발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은하철도000(빵빵빵)' 에서 메텔은 빡빡머리에 붉은 원피스차림이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싶었어요. '999' 는 너무 만화냄새가 나서 '빵빵빵' 으로 바꿨는데,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더군요. 만화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장난기 어린 상상력을 동원해 색다른 무대를 꾸며볼 생각입니다. "

12~15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은하철도000' 은 청년으로 성장한 철이가 메텔과 함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두 주인공은 만화와는 반대로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타악그룹 '공명' 과 소프라노 가수 박미란, '퇴마록' '단적비연수' 의 분장을 맡은 윤예령이 스태프로 가세하고, 전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준규와 영화배우 김주복, 안스안스 무용단이 출연한다.

직접 안무한 이번 작품에서 메텔로 출연하는 안씨는 넘치는 에너지와 아이디어로 작품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물. 알록달록 원색의 의상과 상상을 초월하는 소품, 빡빡머리에 알몸으로 무대 위에서 활개치는 모습이 어느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버렸다.

'본래 성격이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예술적으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든다' 는 안씨는 작품에 임하는 자세 역시 한없이 자유롭다.

"춤이 아니면 어때요,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 정해진 안무대로 하지 않아도 전체 그림이 그려지면 된다고 생각해요. "

그는 이번 공연에서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원시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게 된다. "인간의 본능은 아날로그 시대에 멈춰 있는데, 이 세상은 '디지털' 로 대변되는 기계중심사회로 일찌감치 변해버린 것 같아 소외감을 느낀다" 고 제작의도를 설명한다.

이런 정서가 바탕이 됐을까. 그가 다음달 25일 대구시립무용단장 자격으로 처음 발표하는 작품이름은 '대구별곡' 이다. 대구의 역사와 전통, 사과.인삼.옷감 이야기들을 춤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지난 3개월은 대구에서 터를 닦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위에선 '단장' 이라는 딱딱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단장이 된다고 어디에 얽매이는 사람이겠습니까. 얽매이게 되면 그만둬야지요. " 보수적인 대구시에서 특별히 부탁하는 게 있었느냐는 질문에 안씨는 " '살살 좀 벗겨라' 이 한마디죠 뭐" 라며 특유의 개구쟁이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02-2005-0114.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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