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이양이 누구냐” 범행 완강히 부인 … 버티기 작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이양의 몸에서 나온 DNA와 당신 DNA가 일치한다.”

“DNA가 뭐죠.”

“이양을 아는가”

“이양이 누구죠. 모릅니다.”

김길태가 11일 부산 사상경찰서에서 얼굴을 가리고 수사관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경찰청 김영식 수사본부장이 11일 오전 밝힌 피의자 김길태(33)와 수사관의 대화내용 일부다. 김 본부장은 10일 검거된 김을 상대로 8시간 동안 조사를 했지만 이양 살해사건에 대해서는 “모른다, 나는 하지 않았다. 법대로 해라”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김은 조사과정에서 ‘담배를 달라’,‘자장면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김은 11일 오전까지 수사받은 뒤 유치장에 입감돼 샤워를 한 뒤 잠도 잘 잤다고 한다. 수사관들도 소름 끼칠 정도의 뻔뻔함에 고개를 흔들 정도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경찰은 10일 김의 구강 상피세포에서 채취한 DNA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피해 여중생 이양 몸에서 채취한 증거물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이 이처럼 버티는 이유는 자신이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확정되면 ‘강간살인’ 또는 ‘강간치사’ 혐의로 무기징역형이나 최고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끝까지 ‘버티기’ 작전으로 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김은 경찰이 제시한 DNA 일치가 성폭행의 증거는 될 수 있지만 살인의 직접적 증거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10일 오후 경찰에 연행된 직후 목욕과 수면을 권했을 때 그는 “그럴 것 없다. 조사부터 받자”며 호기를 부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범죄심리학) 교수는 “사이코패스 기질을 보이는 그가 범행을 계속 부인하는 것은 자기방어이거나 의도적 망각을 시도하는 것으로 분석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강력범들이 일단 체포된 뒤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대면 순순히 범행사실을 자백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김의 이러한 태도가 11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재소자들로부터 일단 범행을 부인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들은 ‘교도소 학습효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의 범죄 부인에 대비해 범죄전문가인 프로파일러 3명을 투입해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이 도주하면서 추가 범행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11일 수사본부가 공개한 김의 소지품은 현금 24만2500원과 손목시계, 1회용 면도기 등 17개 품목이었다. 경찰은 김이 체포된 빌라 부근에 있는 미용실에서 신고한 현금 27만원 도난사건과 연관성을 추적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11일 오후 김에 대해 성폭행 후 살해, 시신 유기 등의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의 도피 행각=김영식 수사본부장은 11일 브리핑에서 “그동안 김은 낮에는 빈집에 은신하고 주로 밤에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김이 공중전화로 친구들에게 20여 차례 전화한 곳은 주례동·개금동이었다. 김은 경찰에서 “범행 전인 지난달 초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조금 떨어진 ‘파란 대문집’ 부근 빈집에서 2~3회 잠을 잔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양의 집에서 100여m 떨어진 무속인 집 옆방에 일주일 기거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은 무속인 집 옆방을 제외하고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경찰의 수색 상황을 살펴가며 덕포·삼락·괘법·주례동 빈집으로 옮겨 다녔다. 김은 도주 초기에는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생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부산=김상진·강기헌·송지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