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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칼럼] '군자의 나라' 서 본 살풍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 안에는 조선시대 유학교육의 상징적 기관이었던 성균관이 있다. 한국에 온 뒤 이곳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소감은 각별하다. 특히 성균관에서 전통놀이인 투호(投壺)를 하는 어린이들을 발견하고는 한국이 전통적인 예의범절의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예의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가치체계로서 그 나라, 사회가 간직한 '민풍(民風)' 의 기초이자 핵심이기도 하다. 성균관이 건재함을 보면 한국사회가 지닌 민풍의 수준도 반드시 어느 정도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늘 마주치는 대학교수와 학생들을 보면 이같은 인상이 실제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한다.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하고 끝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길에서 선생을 마주치면 한두 발짝 물러서 예의를 표시한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교수인 나와 마주칠 때 한국 교수들은 항상 "식사하셨어요?" "머리를 깎으셨군요?" 라고 묻는다. 낯선 이국 땅에서 생활하는 필자를 격려해주는 말들이다.

친절하고 남에게 따뜻함을 베푸는 이같은 분위기에 빠져들면서 한국의 유학을 최고의 수준으로 발전시킨 퇴계와 율곡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것은 나만의 경우는 아니지 싶다. 특히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은 같은 동양권 사람인 내게도 아주 새롭게 비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예의범절이 덧없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지하철에서의 경험이다. 하루는 일행들과 전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를 지나려고 하는데 그 방법을 몰라 다소 어리둥절해 하는 중국인 동료 뒤의 한 여자가 쏜살같이 그를 밀치고 표를 내지도 않은 채 지나갔다.

또 한번은 지하철 개찰구를 마치 평행봉으로 착각했는지 한 젊은 친구가 두 손으로 양쪽의 기계를 짚고 훌쩍 뛰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정도면 애교로 봐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은 내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발견된다. 가끔 들르는 쇼핑몰에서는 더 심각한 '사건' 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곳에 화장지와 배추가 널려 있는 경우다.

곡절을 알고 봤더니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기 싫었던 한 주부가 쇼핑장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지 한 꾸러미를 들고 와 사람 대신 줄을 세운 것이다. 화장지만으로는 부족했다 싶었는지 이 주부는 조금 있다 배추를 들고 와 화장지 옆에 세웠다.

그러고는 물건을 고르는 중간마다 잠깐씩 와서 줄이 움직이는 상황에 따라 화장지와 배추를 조금씩 앞으로 옮겼다. 다시 물건 진열장으로 간 그 주부는 한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화장지와 배추를 피해 걸음을 옮겨야 했다.

재래시장에서 목격한 활극의 한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한 손에 벽돌을 든 30세 남짓한 청년과 길고 굵은 몽둥이를 손에 쥔 50세 전후의 남자가 격투를 벌인다. 주위의 사람들은 아랑곳 않은 채 청년은 벽돌을 힘껏 내려치고 중년의 남자는 이를 비켜 몽둥이를 휘두르고….

이런 여러가지가 한국사회만의 현상은 분명 아닐 게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모두 목격할 수 있는 부정적인 모습의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전공 때문에 나는 고문헌을 자주 들춘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예부터 예의를 중시하는 국가였다. '군자의 나라' '예의의 나라' 라고 한국을 지칭하는 중국의 옛 기록도 일찍이 접했었다.

중국인인 나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분명히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다.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전통이 한국사회 속에서 숨쉬고 있음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맞닥뜨리는 '살풍경' 들은 한국사회에서 현대와 전통의 조화가 아직은 부족하지 않느냐 하는 감회를 갖게 한다.

나의 체험으로 소개한 위의 '사건' 들은 결국 다른 사람보다는 '나' 를 앞세우는 현대 서구문명이 불러일으키는 부조화다. 이같은 현상들은 한국이 지녀온 우수한 예의문화에 의해 제지돼야 하고 억제돼야 한다. 이로써 '군자의 나라' 라는 옛 명예를 한국이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에 사는 한 중국인의 바람이다.

양두안즈 <중국 산둥대학 교수,성균관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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