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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재개발 빈집’ 제집 드나들 듯 옮겨다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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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찰이 김을 용의자로 지목한 지난달 28일엔 오후 10시쯤 친구 이모씨가 운영하는 부산 주례동의 한 주점에 나타났다. 김은 이씨에게 “나는 범인이 아닌데 경찰이 나를 쫓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달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이씨는 이 같은 사실을 평소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알렸다. 5분 뒤 김은 이씨로부터 형사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김은 공중전화로 직접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20여 분 뒤 현장에 출동했지만 김은 이미 도주했다.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3일 오전 5시쯤이었다. 이양의 집에서 약 20m 떨어진 빈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김을 경찰 수색팀이 발견해 손전등을 비췄다. 그 순간 김은 재빨리 일어나 입구 반대편 창문을 통해 담장 3.5m 아래로 뛰어내려 달아났다. 형사가 뒤를 쫓았지만 담장에서 뛰어내려 착지하는 과정에서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건물 입구를 지키던 형사 두 명이 뒤쫓았지만 이미 김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 6일부터는 부산경찰청 산하 전 경찰관이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경찰은 10일 오후 2시50분쯤 부산 덕포시장 인근 빌라 앞에서 김을 붙잡았다. 지난 3일 김을 놓친 장소에서 3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부산 여중생 살해 피의자 김길태의 중학 시절 사진. 가운데 위가 김길태다. [연합뉴스]

◆살던 동네 벗어난 적 없어=김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에도 줄곧 집 근처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수감 생활을 제외하면 사실상 태어난 뒤 부산 사상구 일대를 벗어난 적이 없는 셈이다. 교도소에선 사람이 많은 곳을 두려워하는 공황증세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출소 후엔 한 달간 자신의 옥탑방에서 두문불출했다. 휴대전화도 운전면허도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거의 대부분 걸어다녔다.

생활 반경이 좁다 보니 범죄 현장 일대의 지형지물에 익숙했다. 2005년 3월 재개발이 시작된 부산 덕포1동 일대는 빈집이 20채가 넘었다. 골목길이 너무 좁아 순찰차가 들어갈 수도 없다. 김은 이를 모조리 꿰고 있었다. 폐쇄회로TV(CCTV) 위치도 파악하고 있었다.

김은 이웃들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오랜 수감생활로 대인관계도 제한적이다. 이웃 주민들도 그가 모자를 쓴 윤곽만 기억할 뿐 구체적인 얼굴 생김새를 떠올리지 못할 정도다. 김은 지난 1월 길 가는 30대 여성을 납치해 장시간 감금하고 친구들에게 데려가 자랑까지 했다. 정상적인 사회성이 결여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주로 빈집이나 폐가에서 자고 오전 5시쯤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은둔생활을 해 왔다. 경찰에 따르면 김은 은둔 시 일절 외부 출입을 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들어갈 수 없는 잠겨 있는 곳이나 일반인이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한 곳에 숨어 지냈다.

밤에는 동네 수퍼나 시장 점포에서 라면이나 돈을 훔쳐 배를 채웠다. 매일 소주를 마시고 담배도 골초였다. 어머니가 가져다 준 밥과 반찬도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옷가지·가방 등은 다른 집 옥상이나 은폐된 곳에 숨겨두는 습성이 있다. 그만큼 다른 집의 구조에도 훤했다. 살해한 이양의 시체도 남의 집 보일러 물탱크에 숨겼다.

김은 머리 스타일과 안경·모자 등을 이용한 변장술에도 능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상의는 후드 티와 검은색 파카를 즐겨 입었다. 머리는 길렀고, 검은색 계통의 비니를 쓰고 다녔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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