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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농공상의 맨 밑 ‘상인’이 만민공동회 회장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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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899년의 서울 종로 네거리 보신각 주변. 사진 왼쪽 구석이 보신각, 그 건너편이 백목전 건물이다. 만민공동회 회장이 된 싸전 상인 현덕호는 이 건물 다락에서 자기보다 급이 높은 사농공(士農工)을 내려다 보며 개막 연설을 했다. (출처=『사진으로 본 한국백년』)

1898년 3월 1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백목전(현재 보신각 서쪽 길 건너) 앞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대중집회가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근대적’이라 한 것은 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신분의 귀천이나 지위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 ‘대중의 일원(一員)’이라는 자격만 가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만민(萬民)’의 만은 ‘만국’의 만과 같이 ‘모든’이라는 뜻이다. 당시 만민과 같은 뜻으로 흔히 쓰인 말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을 뜻하는 ‘사민(四民)’이었는데, 여기에는 노비나 천민은 포함되지 않았다.

‘사농공상’의 직업별 위계는 동양의 오래된 천하관에 깊이 결부돼 있었다. 사(士)는 하늘(天)의 뜻을 읽어 세상의 도리를 밝히는 자이며, 농(農)은 땅(地)을 갈아 곡식을 수확하는 자다. 공(工)은 땅이 낸 산물을 가공하여 그 형태를 바꾸는 자이니 공산품은 곧 인조물(人造物)이었다. 상(商)은 스스로 천하에 보태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유무상통(有無相通)하여 사농공(士農工), 곧 천지인(天地人) 각각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다.

이날 만민공동회 회장에 뽑힌 이는 싸전(米廛·미전) 상인 현덕호였다. 그는 백목전 다락에 올라 “우리 대한이 자주 독립하는 것은 세계 만국이 다 한가지로 아는 바이오”로 시작하는 개막 연설을 했다. 사전에 이 집회를 준비한 독립협회 인사들은 사농공상의 맨 끝에 자리한 그를 정면에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정치 이념을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그해 가을에 다시 열린 만민공동회의 개막 연설자로는 더 극적인 인물이 선정됐다.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몽매한 자입니다”로 연설을 시작한 박성춘은 다른 천민들에게조차 천대받던 백정(白丁)이었다. 조선시대의 백정(白丁)에는 짐승을 도살하는 ‘도축백정’ 말고도 버드나무 가지로 쇠코뚜레나 고리짝 등을 만드는 ‘고리백정(또는 기류백정·杞柳白丁)’이 있었지만, 백정 차별의 논거는 도축백정의 일과 관련돼 있었다. 백정은 생명을 죽임으로써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해치는 자였다.

현덕호나 박성춘이 한때 ‘만민’의 대표를 맡았다고 해서 사농공상의 직업관이나 백정 차별이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적 이상’의 싹을 심은 만민공동회가 ‘가장 지위가 낮고 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이 오늘에 던지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오늘날 한국인들의 ‘평등지향성’은 세계 최고 수준인 바, 그 깊은 뿌리를 알지 못하고서는 한국 정치와 사회의 미래를 제대로 전망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