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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김치 글로벌 스탠더드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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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월 28일 저녁 스위스 다보스의 슈바이처호프 호텔.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각국 정상을 비롯해 800여 명의 국내외 인사들을 초청한 ‘한국의 밤’ 행사 테이블엔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황제 김치(사진)’가 올랐다. 일반 김치와 달리 무절임에 다시마·배·잣을 넣어 한입에 쏙 들어갈 수 있게 만든 김치였다. 이를 맛본 외국인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원더풀’을 연발했다. 한국적 재료에 발효식품이라는 특성은 지켰지만 매운 맛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렸다. 외국인들도 별 거리낌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이다.

한국의 대표음식 김치의 세계화 작업이 한창이다. 전통은 지키되 세계인들의 공통적인 입맛을 찾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민간기업과 정부가 힘을 모아 해법을 찾고 있다. 10일 경기도 분당의 한국식품원에서 개소식을 한 세계김치연구소는 김치 세계화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10일 오전 한국식품연구원에서 열린 김치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이 김치를 종류별로 살펴보고 있다. 왼쪽 둘째부터 김순자 세계김치협회 회장,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한욱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박완수 세계김치연구소장. [한국식품연구원 제공]

◆김치 종주국의 위상=김치는 한국인의 식단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한국이 김치 종주국이라는 말은 너무 당연해 굳이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리 낙관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비되는 김치의 13%(2007년 기준)가량이 중국 등 외국에서 수입됐다. 지난해 김치 수출액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수입액을 넘어 흑자를 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될 정도다. 그나마 원산지 표시제를 강력하게 시행해 중국산 수요가 줄어든 결과다. 반면 지난해 8938만 달러어치의 김치를 수출했지만 수요처가 대부분 교포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술·산업적으로도 그리 내세울 만한 입장이 못 된다. 국내에서 김치를 만드는 회사는 1000곳이 넘는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을 빼고는 너무 영세해 연구개발(R&D) 투자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지간한 가정에선 저마다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비법을 가지고 있지만, 표준화·규격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대학과 민관 연구소 25곳에서 김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를 이끌어 주고 결과를 통합해낼 컨트롤타워가 없다. 세계김치연구소가 설립된 것도 이런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는 김치 종주국으로서 김치를 세계화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세계인 입맛에 맞을까=김치 세계화의 다른 고민은 ‘맛’이다. 한국 사람들의 입에는 자연스러운 맛이지만, 세계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매운 맛’이 문제다. 종종 한국의 매운 김치를 먹고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TV에 소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매운 맛은 여전히 외국인, 특히 서양 사람들에겐 거의 ‘공포’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세계인들의 공통 입맛에 맞춰 김치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보스 포럼에서 황제 김치를 선보였던 김순자 세계김치협회장(한성식품 사장)은 “한국인의 입맛도 제각각이듯 외국도 나라마다 입맛이 모두 다르다”며 “우리가 즐겨먹는 맵고 짠 김치만 고집한다면 김치 세계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매운 김치는 한국 고유의 맛인데 세계화를 명분으로 이를 포기하면 김치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세계김치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은 박완수 박사는 “전통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 입맛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두 가지 입장을 기술적으로 조화시켜 나가는 것도 연구소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효식품 연구로 확대도=김치연구소 이름에 굳이 ‘세계’를 붙인 이유는 단지 수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피클과 단무지, 독일의 사우어 크라우트(양배추를 절여 만든 음식) 등 세계의 절임·발효식품을 모두 연구하기 위해서다. 김치연구소 박 소장은 “사실 이런 식품이 모두 김치류에 속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식품을 연구해 세계 공통의 입맛을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연구 실적이 쌓이면 세계김치연구소는 ‘발효식품 연구소’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김치에 그치지 않고 된장·젖갈 등 발효식품 전체를 아우르는 연구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김치의 생산방법을 표준화하고 공정을 개선하는 것, 마케팅과 문화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 김치연구소에 맡겨진 역할이다.

최현철 기자


“김치는 코리안 피클, 모든 절임류 연구”

박완수 세계김치연구소장

“외국인들은 김치를 ‘코리안 피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꾸로 피클이나 단무지 같은 절임류들이 모두 김치의 한 종류인 셈이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런 절임류는 상품화할 때 살균처리를 합니다. 살아있는 발효균을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게 김치의 장점이죠.”

10일 공식적으로 문을 연 세계김치연구소의 박완수(사진) 초대 소장은 ‘김치 박사’다웠다. 김치는 한국 음식인데 굳이 ‘세계’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에 대해서도 막힘 없이 술술 풀어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 식품공학 박사 출신인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식품개발연구원에서 김치 분야를 맡아왔다. 소장으로 임명되기 전에도 식품연구원의 김치세계화전략단을 이끌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김치연구소가 생겨서 달라지는 점은 무언가.

“현재 대학과 기업의 연구소 등 25개 기관에서 김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저마다 목적도 다르고 연구 결과가 한 군데로 모이지도 않는다. 김치연구소는 개별 연구자들에게 큰 방향을 제시하고 연구 결과를 집대성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예정이다. 또 마케팅과 홍보·교육 등 한마디로 김치와 관련된 허브가 되는 것이 목표다.”

-다른 나라가 만드는 김치도 연구하나.

“물론이다. 피클·단무지·사우어크라우트 등의 절임류 전체가 연구 대상이다. 발효시켜 만든다는 공통점을 가진 음식들이다. 여기에서 공통된 입맛을 뽑아낼 생각이다.”

-연구소의 다른 과제는 무엇인가.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가장 우선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입맛만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입장도 포용해나갈 생각이다. 생산방식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공정을 개선하지 않고는 표준화된 맛과 높은 품질의 김치가 나올 수 없다. 마지막은 문화적 부분인데 저품질, 값싼 음식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음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김치는 공짜로 더 달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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