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준화교육 이대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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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에 의해 영재로 뽑혔던 어린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15년이 지난 오늘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채 범재(凡才)로 전락했다는 본지 특별취재팀의 추적 보도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재들 중에는 기본 교육조차 받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적이다.

영재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책임은 1차적으로 사후 관리를 소홀히 한 정부에 있다. 정부는 1985년 지능검사와 영재성 테스트 등을 거쳐 전국에서 만 3~6세의 취학 전 어린이 1백44명을 선발한 뒤 학부모들을 서울로 불러 학부모 교육을 하고 몇 차례 영재 교육용 자료를 집으로 보내준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88년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돼 버렸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신동' 이라며 신기해 했을 뿐 이들을 우리 사회의 큰 재목으로 키워내는 데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재들이 이처럼 '추락' 한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의 우리 교육 체제는 산술적 평등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학생간 차이를 외면한 채 하향 평준화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천자문까지 떼고 입학한 어린이에게 학교에선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를 수십번 써오라고 한다면 이들이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게 되는 건 뻔한 일 아닌가. 그나마 보완책으로 세워진 특수 목적고는 입시정책의 유.불리에 따라 자퇴생을 양산하는 등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내년부터 시범 도입한다던 자립형 사립고는 또다시 내후년으로 연기됐다.

21세기는 과학.기술.정보화의 시대이자 무한경쟁의 시대다.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유능한 인적 자원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영재들마저 범재로 만드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론 불가능하다. 이미 선진국들은 70년대 후반부터 영재 교육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상위 3~5%의 영재뿐 아니라 가정 환경 등이 어려운 영재 발굴을 위해 연방정부가 해마다 1천만달러를 특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주에선 한 명의 영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상위 30%까지 심사대상에 포함시킨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평등주의를 앞세운 바람몰이식 개혁은 걷어치워야 한다. 대신 교육의 다양성.수월성(秀越性)이 인정돼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현재의 특수목적고에 대한 여러 제한들을 풀어줘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립형 사립고도 서둘러 도입해 학교.학생들간 경쟁체제를 마련하는 동시에 사학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교육의 하향평준화 정책을 고수하는 한 우리 교육의 후진성은 결코 극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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