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박지원 국정 별동대역 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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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은 지난해 9월 20일 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 사건으로 문화관광부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뒤 사석에서 "나는 전백회(전국백수협회)회장" 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빗댔지만 朴수석은 여유가 있었다. 거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신임을 잃지 않았다는 확신이 깔려 있었다. 장관직을 떠난 뒤에도 그는 金대통령에게 여론 동향과 국정관리 방안을 건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잘 아는 사이인 한 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朴장관은 오전 9시30분쯤 대우재단 빌딩의 사무실로 출근해 신문을 보거나 사람을 만난 다음 오후에는 헬스클럽에 나가 두시간 동안 몸을 다듬었다" 고 말했다. 일요일엔 친구들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등산을 갔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와 지난 1월 국회 청문회 때 증언석에 섰다. 국감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인사 개입을 추궁하자 그는 "나는 잃을 실자 실세(失勢)요, 갈 거자 거물(去物)" 이라고 반발했다. 한빛사건 청문회에선 야당측의 끈질긴 '권력형 비리 의혹' 제기로 곤욕을 치렀다.

한나라당측은 그의 정치적 재기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위험한 측근정치의 부활" 이라고 경계했다. 그렇지만 그는 청문회를 재기의 계기로 삼는 집념을 보였다.

여권 관계자는 "朴수석이 불법대출에 개입했다는 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며 "金대통령이 청문회가 끝난 2월 초부터 朴수석을 청와대로 부른 것으로 안다" 고 전했다.

특히 그는 동교동계 핵심인 권노갑(權魯甲)전 최고위원.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을 만나 金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 으로 만들자는 다짐을 하면서 재기를 모색했다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정부와 민주당에 좋은 의미의 악역(惡役)이 필요한데 그런 인물이 별로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며 "그런 측면에서 그의 복귀는 시간문제였다" 고 해석했다.

6개월 만에 朴수석이 전면 등장함으로써 청와대 비서실 운용 시스템이 바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관측은 정권 초기에 정책기획수석 자리를 만들 때 '선임 수석비서관' 으로서 사실상 '부(副)비서실장' 의 역할을 하도록 조직을 짰기 때문이다.

朴수석이 맡은 정책기획은 업무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한 관계자는 "金대통령이 朴수석을 국정 운영의 별동대(別動隊)로 활용할 것" 이라며 "특히 여권 내부의 차기 주자 경쟁, 여야 지도부 관계 등 민감한 대외비(對外□) 사안을 맡길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이런 업무는 자칫 권력 내부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야당의 비난 공세와는 다른 차원이다.

민주당 당직자는 "朴수석의 역할 공간은 다른 실세들과의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며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과의 업무 조정이 어떻게 정리될지가 관심" 이라고 말했다. 韓실장은 2선에서 국정의 주요 과제를 관리.해결해 왔다.

이양수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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