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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빈 장관 해서는 안될 말 왜 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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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이 23일 김대중.부시(3월 8일), 김대중.푸틴(2월 27일) 정상회담과 관련된 미묘한 교섭경위를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이 처음에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

"러시아는 우리 국회에서 푸틴 대통령이 할 연설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준비해왔다. "

이들 사안은 국가간 신의를 토대로 거의 1급비밀로 취급될 정도이고, 논의 자체도 민감한 대목들이라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견해다.

정종욱(鄭鍾旭) 아주대 교수는 "이 문제로 미 국무부가 성명을 내는 등 공식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을 것" 이라면서 "그러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외교소식통도 "NMD문제를 놓고 한국의 태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불만스러워 할 러시아는 '주한미군 부분' 이 드러난 데 대해 더욱 기분나빠 할 것" 이라면서 이런 외교적 실수가 대러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 한.미는 동맹국〓미국이 한국과의 정상회담 조율과정에서 우리에게 NMD에 찬성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이 사안에 대한 부시 정부의 기본입장에 비춰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북한 등 '우려국가' 들의 대량살상무기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위하기 위해선 NMD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으로선 '양보할 수 없는 이익' (vital interest)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가장 강력한 동맹국의 하나인 한국으로선 '당연히' 동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차관은 "미국의 NMD지지 요구는 북한은 물론 한반도 내에서 미국의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 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킨다고 하니 NMD문제로 한국을 압박할 시점은 아직 아니라는 게 미국의 판단인 것 같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NMD문제를 놓고 李장관이 밝힌 미국과의 교섭경위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즉 '미국은 요구했으나 한국 입장을 고려해 일단 제외했다' 는 것으로 요약된다.

◇ 러, 주한미군 철수 왜 제기했나〓주한미군 주둔문제는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동의' 했다는 점을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번 언급해 왔다.

그럴 정도의 주한미군 주둔문제에 대해 러시아측이 철수를 준비해 왔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미.러관계뿐만 아니라 북.러관계를 고려할 때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측에 일단 미국의 NMD 추진에 제동을 걸고, 이에 대한 강한 불만을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출한 게 아니냐고 분석한다.

즉 북한에 비해 중국과 러시아의 탄도미사일을 겨냥하는 게 미측 NMD체제의 목표라고 인식하고 있는 러시아로선 주한미군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 NMD에 대응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는 설명이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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