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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알리기 본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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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설가 이호철(72.사진)씨가 미국 독서 시장에서 이례적인 '소설 세일즈'에 나선다.

한국전쟁 참전 체험을 다룬 자신의 연작 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의 영어판 'Southerners, Notherners'와 분단을 형상화한 단편 13개를 모은 영어판 소설집 'Panmunjom and Other Stories by Lee Ho-Chul'의 다음달 초 출간에 맞춰 5개 도시 순회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이다. 이씨의 작품이 미국에 번역.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이씨는 25일 "다음달 30일 뉴욕에서 시작해서 12월 중순까지 포틀랜드.시애틀.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내 문학세계를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판기념회 장소에는 하버드대와 버클리대, 워싱턴주립대도 포함돼 있다. 그는 "내년 4월에는 시카고.워싱턴.보스턴 등에서 추가로 설명회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한 이래 분단과 통일이라는 주제를 천착해 온 이씨가 해외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문학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 베를린 국제문학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참가했고, '남녘사람 북녘사람' 프랑스어판과 중국어판이 잇따라 출간돼 파리.상하이도 다녀왔다.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영어.독일어.폴란드어.일어.스페인어 등 7개 언어로 번역됐다.

단편집도 이번 영어판 출간을 시작으로 독일어.스페인어.일본어.중국어판이 잇따라 나온다. 장편소설 '소시민'은 스페인어판이 나와 있고, 독일어판이 이달 중 출간될 예정.

이처럼 활발한 행보를 놓고 노벨문학상을 염두에 둔 '작업'이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는 "준다면 물론 즐겁게 받겠지만, 전혀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책 번역과 해외 문학제 참가 스케줄이 우연히 몰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밖에 나가보라. 한국 문학에 대한 외국 독자들의 이해는 정말 한심한 수준이다. 내 작품을 포함한 한국 문학 알리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자동차로 불과 두세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형제.자매가 50년 넘게 만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을 들려주면 '세상에 그런 나라가 있느냐'고 놀라는 외국인들이 아직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생생한 체험을 녹인 자신의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

실제로 이씨의 삶과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열여덟의 나이에 인민군에 징집돼 참전했다가 유엔군 포로가 돼 남한에 흘러든 체험은 이씨를 평생 분단문학에 매달리게 했다.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당시의 경험을 다룬 것이다. 이씨의 고향 원산에는 열살 어린 여동생이 아직 살아있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씨를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내몰아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 7월 산문집 '이호철의 쓴소리'(우리교육)를 통해 문단의 '패거리 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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