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자유무역권 합류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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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계사를 읽어보면 끊임 없는 영토확장을 통한 신흥 강국의 세계 패권 추구를 파악할 수 있다. 고대 주요제국의 팽창, 근대 식민주의적 침략 등이 이러한 흐름을 나타내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흐름의 근저에는 자국의 제품과 기업을 위한 국외의 자원과 시장을 확보해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국부를 증강하고자 하는 국가발전 전략이 도사리고 있다.

***시장개방으로 장벽 철폐

지난 세기의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국제정치의 기본질서로 호혜평등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됨에 따라 이러한 국가발전 전략을 추구함에 있어서 침략과 약탈에 의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며 세계 각국은 그 대신 관세 무역 일반협정(GATT)을 근간으로 하는 이른바 다자적 국제무역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상호주의와 무차별주의에 입각해 서로에게 국내시장을 열어주고 함께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자적 상호시장 개방은 그 속도가 너무나 느리다 생각돼 그 대안으로 추구하기에 이른 것이 이른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두나라 또는 몇 나라간의 상호 시장개방이다.

이들 일부 국가간의 산업과 기업내지 자본의 이동이 마치 한나라의 지역간 이동처럼 자유로이 이뤄질 수 있도록 10년 내외의 기간에 걸쳐 수입규제와 관세 등 각종 교역장벽을 거의 완전히 철폐하자는 것이 자유무역협정이다.

이를 통한 공동의 내부시장 확대는 대외지향적 국가발전 전략을 추구함에 있어 과거의 침략적 영토확장에 대한 현대적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이 냉전의 종식을 계기로 1990년대 초부터 범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돼 왔다. 게다가 여러 자유무역협정이 상호 통합되며 유럽공동체(EC)와 미국 각각을 중심으로 하는 두개의 거대한 자유무역권이 대두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특수한 형태인 EC가 회원을 서유럽의 15개 선진국(EU)으로 확대했고 동시에 중부 및 동부유럽의 옛 사회주의국들과 남부유럽의 개도국 등 총19개국과 개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또 중동.아프리카 및 중남미의 수십개 개발도상국들과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협정도 논의되고 있다. 이에 병행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됐고 또 중남미국들 상호간 여러 협정이 체결됐다. 나아가 쿠바를 제외한 모든 중남미국들과 NAFTA국 등 총35개의 미주국가 모두가 참여하는 전미주자유무역협정(FTAA)이 2005년께 체결될 예정이다.

양대 자유무역권이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이러한 자유무역권에 합류하고자 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세계총생산의 90%를 점유하는 30대경제국 중 아무런 자유무역협정에도 가입하고 있지 아니한 나라는 일본.중국.대만 및 한국 4개국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중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한국은 앞으로도 이런 상황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국가발전전략차원에서 심히 우려스런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자유무역권을 지향하는 이러한 대세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국가들도 갖가지 자유무역협정을 모색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간 경제협정(CER)과 동남아자유무역협정(AFTA)이 이미 체결됐으며 다시 이들과 미국경제간의 몇가지 연계가 모색되고 있으며 조만간 성과가 있을 것이다.

***美·EU와의 협정 중요

매우 다급한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 한국이다. 최근 구조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안간힘을 쓰고있는 우리나라가 해외의 자유무역권에서 제외돼 차별대우를 받는다면 경제의 재도약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 등 여러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 무엇보다 미국 및 EU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양대 자유무역권 진입을 기필코 달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21세기 경제발전을 위한 우리의 대외전략적 비전이다.

지금 실험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이 국내 과일재배농가의 어려움으로 인해 교착상태에 있다고 한다. 이 상황은 우리가 앞으로 21세기의 대외전략을 성공적으로 추구하려면 이러한 국가적 목표와 농촌인구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키기 위한 농촌개발전략의 혁신을 반드시 이뤄내야할 것임을 나타낸다.

楊秀吉(세계경제연구원 객원학자, 전 주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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