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5월 5일 소록도에서 공연한다. 이 섬을 찾는 첫 외국인 연주자들이다. [레이디 R 재단 제공]
◆노 개런티 공연=아슈케나지는 전화 인터뷰에서 “소록도 음악회의 취지를 듣고 개런티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단원들이 연주할 공간만 있다면 괜찮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콘서트를 열고 있다. “돈을 위해 음악을 하는 건 아니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소득”이라고 했다.
“소록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전혀 없었어요. 오케스트라의 후원자인 로더미어 자작부인(한국명 이정선·61)의 설명과 연주 제의를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가 고른 연주곡도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운명을 이겨내려는 스토리를 쓴 사람입니다. ‘운명’에 그 과정이 잘 담겨 있어요. 제가 사람들의 병을 의학적으로 고쳐줄 수 없지만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바랄 게 없습니다.”
◆“음악으로 돕는다”=아슈케나지의 ‘개런티 결단’은 처음이 아니다. 1998년 5월 그는 출연료를 3분의 1로 낮춰 받고 한국 독주회를 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국내 공연장이 얼어붙어 뉴욕필, 머레이 페라이어 등 해외 아티스트 무대가 잇따라 무산됐던 때였다. 당시 공연을 기획했던 크레디아의 정재옥 대표는 “경기침체 속에서 음악회마저 줄줄이 취소되는 것을 막자며 아슈케나지가 소액의 출연료만 받기로 했다”고 기억했다. 티켓은 매진됐다. 그는 당시 모차르트의 a단조 소나타,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와 쇼팽의 소품 등을 연주했다.
이처럼 그가 음악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도움’이다. 98년 한국 독주회의 결정도 그렇게 나왔다. “당시 매니저가 나에게 공연 취소 의견을 물어보기에 ‘최소한만 받고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음악은 어려운 사람들을 감싼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소록도 공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 교향악단의 수준을 증명한다는 뜻이다. 수준 높은 청중, 훌륭한 시설이 있는 공연장과 소록도의 강당이 그에게는 비슷한 크기의 기쁨을 주는 듯했다.
김호정 기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1937년 러시아 태생. 모스크바음악원을 졸업한 후 차이콥스키·쇼팽·퀸엘리자베스 등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에서 1, 2위를 차지했다. 70년대부터 지휘를 시작해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맡았으며, 현재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계관 지휘자다. 2007년 피아니스트 은퇴를 선언하고 음반 녹음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