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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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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가을은 높은 산꼭대기에서부터 달음질쳐 내려온다. 축령산 정상을 울긋불긋 물들이기 시작하던 물감은 한지에 물이 스며들 듯 서서히 아래로 스며들어 드디어 아침고요의 단풍나무.화살나무.은행나무에도 온통 붉은 물, 노란 물을 쏟아 놓는다. 저 은행잎은 노란 물감으로 우리 마음까지 물들여 놓고, 저 단풍잎은 저리도 진한 선홍빛으로 물들어 우리 가슴을 아리게 한다. 목련.히어리.생강나무 같은 꽃나무들도 한여름 내내 우리 마음에 잊혔다가 이제 다시 한번 울긋불긋한 잎으로 다가와 지난 세월의 사진처럼 눈물겹게 아름답다.

누가 말했던가? 사라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왜 가을은 저토록 화려한 물감으로 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 놓고야 마는 것일까? 왜 지는 해는 저녁 하늘을 그리도 아름답게 물들여 놓고는 석양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 곁에서 떠나간 후에야 비로소 그의 아름다움을 보곤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가? 왜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다운 것일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끊임없이 갈등하고 경쟁하곤 한다. 이런 삶의 경쟁은 가장 평화스러워 보이는 숲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큰 나무 밑에는 작은 나무가 자라고 또 그 밑에는 온갖 야생화가 자라고 있지만 모든 가지와 잎은 서로 많은 햇빛을 보려고 경쟁하고 그 경쟁에서 지는 것은 도태돼 죽어버리는 것이 자연의 원리다. 그늘진 곳의 가지는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고 큰 나무 밑에서는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이것이 존재하는 것들의 슬픔이다. 존재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남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 내가 태양을 바라보는 동안 내 뒤에는 그늘이 던져지고 있다. 내가 남의 태양을 가리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사라져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사라진다는 건 내가 던져주던 그 그늘을 없애주는 것이다.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도록 보호하는 숭고한 자기 희생의 행위다.

우린 얼마나 자주 지는 꽃을 슬퍼했던가? 하지만 꽃은 시들어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시들어 죽지 않는 꽃은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화에 불과하다. 그 아름답게 뽐내던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 가지만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새 생명의 씨앗이 잉태돼 맺힌다. 그렇게 온 세상을 화려하게 물들였던 단풍이 퇴색해 낙엽 질 때 시인은 가을을 슬퍼하지만, 그 낙엽 진 자리엔 어김없이 새봄을 준비하는 눈들이 남겨진다. 그리고 차디찬 겨울이 지나 가지 사이로 햇볕이 스며드는 봄이 오면 따뜻한 양지엔 야생화들이 피어난다. 그러나 빽빽한 상록수 잣나무 숲 속에는 어느 야생화도 피어나지 않고, 그저 적막한 겨울이 늦게까지 이어질 뿐이다.

햇빛이 위대하지만 그 태양이 계속 빛난다면 휴식과 쉼이 없는 땅은 사막이 될 것이다. 하루의 소임을 다하고 물러날 때를 아는 태양은 저녁 노을의 찬가 속에 사라져 가지만 그 자리에 비로소 별과 달이 초롱초롱 빛나게 되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생명의 미학이요,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함께 연출하는 예술이다. 내가 가린 태양으로 인한 그늘을 미안해하며 사는 사람,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사라져야 할 것과 그때를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더 높은 데 있는 사람,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그늘을 던지고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잠시 후면 모두가 그렇게 아름답게 사라져 가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삶은 숭고한 것이고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산야의 단풍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 가을날 성서의 이 한 구절이 내 뇌리에 자꾸만 되새겨진다.

한상경 아침고요수목원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