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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영화제 '여복서·레슬러' 영화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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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격년제로 거행되는 서울여성영화제(http://www.wffis.or.kr)(02-541-3919)가 다음달 15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와 하이퍼펙 나다에서 열린다. 여성의 눈으로 영화와 세상을 바라보자며 1997년 시작한 여성영화제는 지구촌 전역의 여성감독이 제작한 최근작(관람료 편당 4천원)을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자리다.

올해엔 8개 부문에 걸쳐 70여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1회(30여편), 2회(50여편)보다 상영 편수가 크게 늘어났으며, 경쟁 형식으로 진행하는 단편영화제 출품작도 종전의 한국에서 아시아 전체로 확장했다. 지난 2~3년간 세계 여성영화의 화제작을 보여주는 '뉴 커런츠' 부문을 중심으로 올 여성영화제의 감상법을 간추렸다.

◇ 여자라고 권투를 못하나=지금까지 여성영화에서 비교적 생소했던 스포츠를 다룬 작품이 많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 최우수 영화상.감독상을 받은 '걸 파이트' (캐린 쿠사마 감독)가 대표적 사례. 뉴욕의 한 체육관에서 권투를 알게 된 한 소녀가 권투를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과 타인에 대한 존경심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올 베를린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가이아 걸스' (킴 론지노토.제이노 윌리엄스)는 일본 여자 프로레슬러를 조명한다. 순종을 여성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 레슬러의 자아 찾기를 형상화했다. '섀도 복서' (카티아 밴코우스키)는 실제 독일 여성 권투선수를 모델로 여성의 몸에 대한 통념을 뒤집은 다큐멘터리다.

◇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라〓갈수록 다원화.다양화하는 여성의 성문제를 동성애 코드로 접근한 작품이 눈에 띈다. 여성영화제인지라 레스비언 관련 영화를 다수 준비했다. '아넬리스의 커밍 아웃' (티나 가라비)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섞어가며 열일곱살의 레스비언 소녀를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역사수업' (바버라 해머)은 사진.광고.영화 등에 재현된 레스비언의 이미지를 배열하면서 동성애의 역사를 유쾌하게 정리한다. 평범한 소녀와 레스비언 소녀의 관계를 통해 성의 정체성을 탐구한 '러브/주스' (신도 카제)도 관심을 끈다.

◇ 성과 사랑, 영원한 화두〓남성 위주의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사랑은 어디까지 주체적일 수 있을까. 올 여성영화제에 나온 대다수 작품의 공통된 고민이다. 우선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부정한 관계' 가 주목된다.

스웨덴의 영화 철학자로 불리는 잉마르 베리만이 극본을 쓰고 한때 그의 부인이었던 리브 울만이 연출했다. 남편의 친구와 관계를 맺는 여배우를 통해 성의 이중성을 파고든다. 프랑스 영화 '마리의 이중생활' (비르지니 와공)의 주인공은 결혼생활 12년의 주부. 자신의 속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쉰살의 흑인이 상대로 나온다. 호주 영화 '세레나데' (모간 카뎀)는 남편.연인 누구에게서도 영혼의 위안을 받을 수 없는 여인의 열정을 다룬다.

◇ 놓치기 아쉬운 특별전〓영화제의 얼굴에 해당하는 '뉴 커런츠' 외에도 올 여성영화제엔 다양한 기획전이 마련됐다. 지난 반세기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성과 영화, 그리고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천착한 프랑스 여성감독 아네스 바르다의 특별전, 비비안 챙.첸 루시페이 등 최근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만 여성감독의 작품을 엄선한 대만 현대여성감독전, '공처가 삼대' (유현목), '남자 기생' (심우섭) 등 60년대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 여성문제를 되돌아보는 한국영화회고전, 역량 있는 신인감독의 경연 무대인 아시아단편경선 등 식단이 풍성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자녀를 둔 어머니를 위해 특별 상영시간을 매일 1회(오전 11시) 마련하고 그 시간에 놀이방도 운영한다. 여성영화제의 무시할 수 없는 관객인 주부를 배려한 올해의 달라진 모습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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