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오탁번'너무 많은 것 가운데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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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보잘 것 없어도 생선 가시마냥

뭔가 목구멍에 걸리는 주제가 있을까

깜부기처럼 새카맣게 목숨 태워서

거름더미에도 못 얹히는 신세가 되어

미친 돼지도 안 먹는 주검이 되어

그 많은 가운데 하나도 못 되는

캄캄한 어둠이고 싶다.

오탁번(1943-) '너무 많은 것 가운데 하나'

시인은 '보잘 것은 없어도 생선 가시마냥/뭔가 목구멍에 걸리는 주제'를 갖지 못해 안타까워한다.차라리 미친 돼지도 안 먹는 주검이 되거나 캄캄한 어둠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적 삶이 바라는 행복이란 오히려 그 반대다.목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기름진 음식을 먹고,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되고 싶어하니까.그렇다면 시인은 왜 이같은 일상의 행복을 거부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의 현실이 그 추구하는 감각적 쾌락과 달리 그만큼 헛되고 무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시인이 의미 없는 '그 많은 것 가운데 하나'가 되기 보다 차라리 의미 있는 주검이나 어둠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오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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