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끼 읽끼] 스토리 파악 못하는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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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옛날 옛적 어느 산골에 꼬부랑 할머니와 꼬부랑 할아버지가 살았답니다. 어느날 할머니는 냇가에 빨래를 하러 갔고, 할아버지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나무를 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똥이 마려워 냇가에 똥을 눴습니다. 똥이 시냇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 할머니가 빨래하고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는 된장인 줄 알고 호박잎에 똥을 싸서 집으로 가지고 와 찌개를 끓였습니다. 할머니는 저녁상에 찌개를 올렸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입 먹고는 '꼬부랑 깽, 꼬부랑 깽' 했답니다. "

과거 할머니들이 손자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들려주던 '꼬부랑 할머니' 얘기 한토막이다.

요즈음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나 외국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면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세탁기만 보며 자란 아이는 옛날 냇가에서 빨래를 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고, 외국 아이는 된장이 무언지 몰라 답답해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에 대한 스키마(schema)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바틀릿이 1932년 처음 사용한 용어 스키마는 하나 하나의 지식이 아이의 기억 속에 쌓여 만들어진 경험의 총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그 내용을 그대로 말해보라고 하면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이는 사람마다 형성된 스키마가 달라서다.

스키마 형성을 위해선 우선 아이의 생활과 밀접한 내용의 책을 골라주는 것이 좋다. 얘기의 배경.발단.내적 반응.시도.결과에 대한 반응이 모두 담겨 스키마 구조가 단단한 동화를 권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책을 읽기 전에 내용 이해에 필요한 스키마를 키우는 작업도 필요하다. 가령 '꼬부랑 할머니' 얘기를 하기 전에 세탁기가 없던 시절 빨래를 어떻게 했는지 알려주거나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지 물어 스키마를 활성화시켜 주는 것이다.

정태선 <활동중심언어연구소장>

◇ 독서 칼럼의 제목 '책끼읽끼' 는 중앙일보와 활동중심언어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조기 독서 프로그램입니다. 구독 및 독서 상담 02-37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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