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명도 남 알아서" 북한, IT위해 빗장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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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설립하자는 남측 제안을 수용한 것은 낙후된 정보기술(IT)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고심어린 결정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지난 1월 중국 상하이(上海) 방문 이후 다듬어온 '북한식 개혁.개방' 의 틀이 처음으로 윤곽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정부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8일 "대학 명칭도 남측 파트너인 동북아교육문화재단측이 알아서 지으라고 할 만큼 북한은 남측의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허가서에는 공동운영으로 돼 있지만 사실상 '백지위임' 이란 얘기다.

특히 대학교수.연구원이 평양에 머물면서 북한의 학생들을 양성함으로써 남북한이 균형적인 기술발전과 교류를 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와 함께 국내 건설업체와 인력의 진출도 예상된다.

재단 관계자는 "다음달 3일 설계를 맡은 정림건축(회장 김정철)의 전문가를 포함한 12명이 방북해 본격적인 착공 준비에 들어갈 예정" 이라고 말했다.

대학 설립안에 따르면 최첨단 설비가 갖춰질 이 대학은 정보통신공학.생물공학.상경학 등 3개 학부로 구성된다.

21세기 국가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인 IT와 바이오기술(BT)은 물론 국제무역과 실용영어 교육을 북한 당국이 절실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 관계자는 "자본주의 경제 전문가와 컴퓨터 기술인력 양성에 초점이 모아질 것" 이라고 말했다.

재단측은 당초 5백만달러를 투입해 북한의 경제특구인 함북 나진.선봉시에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키로 하고 1998년 1월 통일부에서 사업승인을 받았다.

그렇지만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대학 건립은 지지부진해졌고, 그 해 10월 대학설립을 주도했던 김진경(金鎭慶) 연변과기대 총장을 '간첩혐의' 로 35일간 억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북측은 최근 金총장에게 사과의 뜻을 전달한 뒤 '기왕에 할 바에는 평양이 좋겠다' 면서 총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 왔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5차 장관급 회담 무산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을 걱정하던 정부는 "북한이 뜻밖의 카드를 내놓았다" 며 이번 합의가 돌파구가 되길 기대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북한은 남측 민간단체와의 교류.협력은 꾸준히 해 왔다" 면서 "이번 합의가 무산된 남북 장관급회담의 재개와는 직접적 연관성은 없다고 본다" 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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