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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연애소설 읽는 노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장편 『백년동안의 고독』의 가브리엘 마르케스 이후 남미 문학의 요즘 판도가 궁금하지 않으신지. 혹시 당신이 이자벨 아옌데.바르가스 요사 같은 그쪽 문학 특유의 '이야기꾼 작가들' 과 마술적 리얼리즘에 관심이 없지 않다면, 국내 독서시장에 첫 소개되는 남미의 문제작가 루이스 세플베다(52)의 이름을 일단 기억해두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확실히 고만고만해진 데다 거물들이 사라진지 오래인 제1세계에 비해 남미 문학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본디 소설은 근대의 적자(嫡子)문학 장르인데, 휘청거리는 유럽문학의 대안으로 읽히는 것이다.

'마르케스 이후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로 평가받는 칠레 출신 작가 세플베다의 경우 선배들의 그런 특징을 고스란히 대물림하면서 또 다른 독자적인 리얼리티의 힘까지 갖추고 있다.

어찌됐든 외국문학 전문 '열린책들' 이 세플베다의 출세작 『연애소설 읽는 노인』과 함께 선보인 세 권의 소설 『감상적 킬러의 고백』 『귀향』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발표된 지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세계적 규모의 평가가 이뤄졌으나 '제1세계 지향성' 이 큰 국내에서는 뒤늦게 출간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내 그의 대표작 세 권이 마저 선보일 경우 '세플베다 읽기' 가 독서시장의 새 풍경으로 등장할 것이 기대된다.

비교적 명쾌한 선악 구도와 중편 정도의 분량 때문에 빠르게 읽히는 『연애소설…』은 소재상으론 환경소설. '개발' 명목 아래 아마존 처녀림을 헤집고 다니는 백인 노다지꾼들과 매판적인 현지 관료들의 행태를 현지인의 시각에서 다룬다.

하긴 환경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룰 때 '우리시대 재앙의 원인 제공자' 에 과녁이 닿을 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소설 속 화자(話者)는 거듭 "빌어먹을 백인들" 이라고 투덜대면서 제1세계를 저주한다. 때문에 알고 보면 고도의 정치소설이다.

내용은 이렇다. 무대는 아마존의 한촌 '엘 이딜리오' . 대부분 고향을 등진 정착 이주민들이 있고, 거들먹거리는 읍장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노다지꾼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주인공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백인이지만 원주민 인디오들과의 오랜 삶 속에서 밀림의 지혜를 얻은 인물이며, 외부세계의 '슬프고 아름다운 연애소설' 을 읽고 또 읽으며 위안을 얻는 위인이다.

이 한촌에 백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아연 긴장감이 돈다. 새끼를 무더기로 잃은 거대한 암살쾡이가 비통에 못이겨 인간 사냥에 나선 것이다.

이 대목은 작가의 의중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인데, 문명과 제1세계에 대한 자연의 보복을 강력히 암시한다. 결국 노인은 읍장의 강제에 등떠밀려 살쾡이 사냥에 나선다. 정글의 삶에 대한 정교한 묘사속에 암살쾡이와의 한판승부 대목은 이 책의 가장 광채나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백인과 문명 대신 아마존에 선명하게 손을 들어주고 있다. 암살쾡이와의 싸움은 '인간 성취의 위대한 승리' 가 아니라 상처받은 동물과 자연을 위한 장려한 진혼곡으로 처리된다.

책장을 덮으며 당신은 확실히 남미 문학은 힘이 세다는 점을 확인할 것이다. 그 힘은 국내문학이 배워야 할 미덕이지만, 무엇보다 제1세계와 그에 공조한 우리가 망가뜨린 자연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명사적 작업이다.

조우석 기자

<'노인과 바다' 와 '연애소설 읽는 노인'>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작가 세플베다는 원력(願力)이 크고 자신만만하다. 이점은 이 작품이 제1세계의 대표적 문학을 패러디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주타격 대상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세플베다는 이 작품을 정면에서 뒤집는다.

즉 헤밍웨이는 노인 산티아고의 '도전' 을 통해 '인간승리' 를 말하려 했다. 인간승리란 알고 보면 제1세계적 모더니즘의 단골 주제곡이 아니었던가.

반면 세플베다는 암살쾡이를 '적' 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되레 상처받는 자연의 상징으로 그린다. 따라서 볼리바르 노인과 그와의 싸움이란 것도 싱싱한 삶의 근원을 찾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알고보면 인간승리란 것이 자연을 망가뜨리고, 인간의 발등을 스스로 찍는 행위였던가를 세플베다는 묻는다. 확실히 세플베다를 읽으면 공격적 모더니즘에 대한 세계사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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