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몇 시간 앞두고 있을 때였다. 한국 대표선수들은 같은 날 먼저 열린 일본과 터키의 16강전을 TV로 지켜보고 있었다. 일본이 0-1로 져 탈락하자 한국 선수들은 환호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순간 히딩크 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아직도 배가 고픈데 너희는 배가 부른 것 같다. 결국 정신력의 문제다. 여러분은 절대 일본처럼 하지 마라.’”
이 교수는 “히딩크는 혼만 낸 게 아니라 팔꿈치를 많이 쓰는 이탈리아 선수들의 특징을 주지시켰고, 파울을 당하면 심판에게 달려가 강하게 항의하라고 지시했다”며 “히딩크의 치밀한 작전이 결국 토티를 퇴장시켰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0-1로 몰리던 후반 홍명보·김태영·김남일 등 수비 자원들을 빼고 황선홍·이천수·차두리 등 공격수를 투입하며 연장전 역전승(2-1승)을 일궈냈다. 이탈리아를 꺾은 한국은 8강에서 스페인마저 무너뜨리고 4강에 올랐다.
◆“팀보다 강한 스타는 없다”=히딩크 감독은 스타 길들이기의 달인이었다.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 시절 호마리우,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았을 때는 에드가 다비즈에게 항복선언을 받아낸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 대표팀에서는 안정환이 대상이었다. 이 교수는 “히딩크는 훈련장에 고급 승용차를 끌고 온 안정환을 타깃으로 삼았다. 축구보다는 헤어스타일에 신경 쓸 것 같다는 말로 그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소속팀(당시 페루자)에서 벤치에 있는 선수(안정환)를 대표팀 주전으로 쓸 수 없다”면서 그의 승부욕을 일깨웠다. 최종 엔트리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히딩크는 진작부터 안정환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절치부심한 안정환은 미국전 동점골과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뽑아냈다. 이 교수는 “선수들이 가진 100% 그 이상을 뽑아낼 줄 알아야 진짜 감독이라는 것이 히딩크의 지도 철학이었다”고 설명했다.
◆숙소 내주고 얻은 잉글랜드 평가전=이 교수는 월드컵 첫 경기를 보름여 앞두고 열린 잉글랜드와의 평가전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잉글랜드는 월드컵을 앞두고 서귀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한국 대표팀이 호텔을 비워주면 평가전에 응하겠다고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난 숙소를 양보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고 잉글랜드가 강팀이라 반대했었다”며 “하지만 히딩크는 강호와의 대결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흔쾌히 잉글랜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한국은 박지성의 동점골로 잉글랜드와 1-1로 비기며 자신감을 얻었다.
허정무팀은 남아공에 입성하기 직전인 6월 3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스페인과 평가전을 치른다. 이 교수는 “히딩크 감독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강호와의 대결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유로 2008 우승팀 스페인과 맞붙어 우리가 잃을 건 없다. 스페인전은 분명 16강 진출의 보약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최원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