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는 가끔 방으로 불러 글씨 봐달라 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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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동 1번지 국회 의원회관. 법안전쟁을 벌이는 의원들과 보좌관·민원인들로 북적이는 건물이지만 111호는 은은한 묵향이 서린 서예 작품으로 가득하다. 의원들이 짬날 때마다 찾아 붓을 드는 ‘국회의원 서도회(書道會)’ 방이다.

고강 선생이 자신에게서 서예를 배운 국회의원들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문희상 국회부의장 작품, 가운데는 주승용 의원 작품이다. [김형수 기자]

이곳에는 원로서예가이자 25년간 ‘서예 선생님’으로 의원들을 가르쳐온 청암(靑菴) 고강(81) 선생이 있다. 고 선생의 이력엔 ‘국회 사무처 서예관’이라는 유일무이한 직책이 있다. 9대 국회가 열리던 1978년 국회에 들어온 이래 본회의장에 놓일 의원들의 명패를 쓰는 게 그의 일이었다. 총선이 끝난 뒤 국회가 개원할 때쯤이면 새 명패를 쓰는 그의 사진이 일간지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다 의원들의 ‘투척’으로 인한 부상을 막기 위해 명패가 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명패 이름을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쓰게 되면서 ‘서예관’이라는 직제는 사라졌다. 대신 그는 의원 30여명이 85년에 꾸린 ‘서도회’를 맡았다. 그 뒤 현재의 18대 국회까지 그의 지도 아래 붓을 잡았던 의원들이 줄잡아 200명을 넘는다.

“JP(김종필 전 총리)는 자민련 총재 시절 가끔 방으로 불러서 글씨를 봐달라고 했어. (정무장관을 지낸) 김용채 전 의원이 제일 열심이던 사람이야.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의원일 때 나한테 명함을 주면서 ‘글 좀 쓰고 싶다’ 했는데 바빠서인지 별로 오진 못했어. 박근혜 전 대표도 하고 싶다곤 하던데…. 원래 박정희 대통령이 ‘민족중흥’ 같은 글을 많이 썼잖아. 김형오 의장도 서예 좋아하는데 의장되고 나선 안 오더라고.”

고 선생은 ‘사람사는 세상-노무현 통일민주당 노동위원장’이라 적힌 명함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의원시절 서예전을 감상하는 사진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요즘 국회를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지금은 의원들이 농성이나 하는 곳이지만 15대 (국회)까지는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서예전을 열었어. 예전엔 그런 멋이 있었는데 정치가 너무 각박해져서인지 요샌 의원들이 여유가 없고, 작품도 안 나와.”

많을 땐 50명에 이르던 회원이 요새는 문희상 국회부의장, 정동영· 원희룡·강기갑 의원 등 20여 명에 그친다고 했다. 지도자가 되려면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갖춰야하고, 글씨가 곧 사람이라는 생각에 다들 서예를 배우려 했던 과거와는 다르다고 한다. ‘경천애인(敬天愛人)’‘대도무문(大道無門)’처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주 써서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나, 정치인들이 글을 선물하면서 ‘동지’를 모으던 모습도 사라졌다.

“글씨는 하루 아침에 되지 않아. 처음엔 획 긋는 것부터 배우고, 나중엔 자기 글씨가 나와야해. 잡념을 버리고 무아지경에서 쓰는 거야. 욕심이 없어야 하는 거지. 그런데 요즘 정치가 너무 급박하잖아. 양보가 없고 잡음이 일어나. 서예 안하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지.”

하지만 그는 요즘도 붓을 놓지 않는다. 19일엔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전, 8월에는 중국 허난성이 주최하는 ‘단성 제1회 국제서법전’에 참여한다. 그는 언제까지 국회를 지킬까.

“건강할 때까지 나와야지. 내가 없으면 국회에서 이런 곳도 사라질지 몰라.” 그의 한숨이 깊었다.

글=백일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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