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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와이드] 반갑다! 도심 야외공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11일 오후 대구 국채보상기념공원.

대구 도심의 청소년 광장인 이 공원에서는 봄 기지개를 펴듯 한마당의 야외공연들이 신명나게 펼쳐졌다.

광우병을 주제로 한 판토마임 '미친 소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대무용 '봄이 오는 소리',포크송 무대 등이 세시간 동안 이어졌다.

머리에 물을 들인 청소년들이 공연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나 박수를 치며 흥겨워 하는 구경꾼들 모두가 기쁜 표정들이었다.

대구의 거리문화운동가 조성진(43)씨가 4년 째 매월 한차례 꼴로 판을 벌이고 있는 거리공연의 풍경이다.

대구에서 '문화 게릴라'로 불리는 조씨는 이곳 뿐 아니라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교보아케이드 광장 등 행인들이 물결을 이루는 번화가 곳곳에 출몰한다.

"물류공간의 기능만 남은 삭막한 도시의 거리를 시민들의 생활 또는 표현공간으로 되살리려는 작업입니다."

그가 내미는 명함에 적힌 여러 직함 중에서도 '축제문화연구소' 소장이라는 감투가 그의 작업을 짐작케 해준다.

거리 굿이 우리 축제문화의 원형이라고 믿는 그의 본업은 마임 공연이다.

대학(연세대 신학과)시절,종교연극 중의 한 장르로 접했다가 마임의 세계에 빠져 든 그는 대학졸업후 마임을 무기로 거리 굿을 되살리려는 '광대'의 길을 걸어왔다.

"거리문화운동은 생산-소비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도시문화와 폐쇄된 공간 ·관객만을 고집하는 예술활동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거리'는 그를 비롯한 문화운동 패걸이들에게 있어 큰 의미를 갖는다.

봄 ·가을이면 자치단체 등이 앞장 서 벌이는 갖가지 축제들이 쏟아지지만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군민체육대회나 시민위안잔치 쯤의 행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행정관청은 기획을 하고 비용을 댄 시민들은 그저 일회성 관객일 뿐이다.

그는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놀이와 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난장'이 축제로 자리잡기를 꿈꾼다.

이를 위해 그는 3년전부터 뜻을 같이하는 쟁이들과 '도란도우'라는 모임을 만들어 도심에서의 굿마당 열기에 나서고 있다.

레파토리도 환경문제와 문명비판을 주제로 하는 마임공연과 '록과 포크로 노래하는 도시''거리에서 만나는 재즈와 풍물' 등 다양하다.

30회의 거리공연을 마친 그는 요즘 공연에 나설 때마다 시민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라'는 식으로 공연을 하지만 열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공연 도중 구경꾼을 불러내면 기꺼이 나서고 시민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에서 조씨는 희망의 싹들을 보고 있다.

이따끔 모금 모자를 돌려 반응을 떠 보기도 한다. 과거에 2만원 남짓하던 것이 요즘은 7∼8만원을 넘긴다.

대구시에서도 지난해부터 공연때마다 일정액의 지원을 시작했고 지역 예술인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5년 또는 10년후의 동성로 모습에 대해 그는 '개똥이 아버지가 동년배들의 환호 속에서 통기타를 연주하고 한켠에서는 유치원발표회도 이루어지는 거리'쯤 될 것으로 꿈꾼다.

진정한 시민축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들어온다.올 봄 그는 충남 아산시의 '충무공 축제' 총감독직을 맡는다.이 축제의 줄기가 될 '난중일기 2001'을 그는 주최측과 구경꾼이 엄격히 구분되는 기존의 퍼레이드 개념에서 벗어나 풀이와 놀이가 어우러지는 굿마당으로 꾸며 볼 생각이다.

오는 7월에는 동성로에서 전국의 마임 광대들을 불러 제1회 '대구거리마임축제'를 열 작정이다.

대구=정기환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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