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 시평] 화나면 밥도 안 먹는 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도올 김용옥이 자신을 동양학의 '9단' 에서 '새발의 피' 로 강등시켰다. 감히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실력자에서 아무도 그 겸손을 따라갈 수 없는 간절한 구도자로 간판을 바꾼 것이다. 후자가 좀 더 고차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자신에 대한 비판에 정면대응을 회피하는 전략이다.

***기분대로 하는 古典 해석

근자에 제기된 도올에 대한 비판은 두가지인데, 첫째는 그의 『도덕경』이나 『논어』의 해석에 오류가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의 자세와 언어가 성현의 사상을 전달하는 사람의 것으로 매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학자라면 문제가 제기된 구절에 대해 아직도 자기 해석을 고집한다면 그 이유를 밝히고, 아니면 비판의 타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접근방식과 언어습관이 동양적 성현의 해석자로서 적절한가 아닌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천명해야 한다. 자신에게 논리적 비판을 한 사람에 대해 방송으로 나갈 수 없는 야비한 욕설을 하는 것은 자신의 '복권' 에 조금도 도움이 안된다.

고전의 해석은 해석자의 기분대로 하면 되고 저자의 원 뜻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 아니라면 주자(朱子)나 퇴계.다산.제임스 레게.아서 웨일리 공히 '생각에(마음에) 사악함이 없다' 로 해석하고 있는 위정편 2장의 '사무사(思無邪)' 를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事)의 예찬으로 푼 것 등 이의가 제기된 구절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밝혀야 되지 않겠는가.

『논어』는 제자들을 올바른 인격수양으로 이끌기 위한 공자의 가르침을 모은 책인데, 공자는 색(色)을 수양에 치명적인 방해가 되는 것으로 경계했을 뿐 아니라 『논어』에서 '사(思)' 자는 '고임' 이라는 뜻으로 쓰인 일이 없고 언제나 '깊이 생각한다' 의 뜻으로 쓰였다.

그의 자세와 언어에 대한 비판 역시 단순히 마음에 안들고 귀에 거슬린다는 불평이 아니고, 그가 공자 부자를 계속 "짱구 아들 잉어" 같은 식으로 희화화하고, 유자나 증자의 가르침을 "개똥 같은 소리" 라며 폄하하고, 심지어는 공자마저 자기 문하생처럼 점수를 매기는 그의 자세가 『논어』 해석자의 자세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므로 그는 자신의 자세와 언어를 중간점검하고 앞으로도 같은 자세와 말투를 견지할 것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도올이 유포하는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지식과 신중하지 못한 발언들은 그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지극히 근심스럽다. 그는 『논어이야기』 20강 근처에서 한 강의를 전부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개괄하는 데 할애했는데, 헬레니즘은 세속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어서 유교와 공통된 것이고 헤브라이즘은 종교적이고 초월적이어서 불교와 같다고 주장하고 "나처럼 동서양을 포괄한 사람이 이제껏 없었다" 며 자신을 극찬했다.

헬레니즘과 유교, 그리고 헤브라이즘과 불교는 유사성보다 본질적 상이성이 훨씬 큰데 둘씩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사상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 방해가 된다.

그리고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교통경찰에게 봐달라고 엉기는 사람이 오히려 수치(羞恥)를 아는 사람인 것 같은 인상을 남긴 '有恥且格' 에 대한 설명, 현명한 학생은 강의를 다 알아들으니까 질문을 안하고 바보 같은 학생들만 질문을 하니까 토론수업은 웃기는 것이라든가, 교수는 젊은 사람이 해야 하고, '아랫도리에 힘 없는' 사람은 학문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식의 발언 등이 모두 매우 유해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성 발언이다.

***비판에 대한 소신 밝혀야

또 '發憤忘食 樂而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를 '화가나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즐거우면 근심도 잊어버리고 늙어가는 것도 모른다' 로 독창적인 해석을 하고는 공자가 정열적인 인간이라고 예찬했는데, 그렇다면 공자가 그렇게 화를 낸 것은 도올이 '어떤 소리를 들어도 화가 안난다' 고 풀이한 '耳順' 의 나이, 60세가 되기 전의 일이었을까,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던 70세 이후까지였을까? 제자들이 "우러러 볼수록 높고 사람을 차근차근 이끌어 주시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분" , "사다리를 놓아 하늘에 오를 수 없는 것과 같이 따라갈 수 없는 분" 이라고 한 공자는 도올의 공자와는 동명이인이었던 것일까?

서지문 <고려대교수.영문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