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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건강 어떤가” 묻자 “겁난다” 후다닥 끊어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목소리는 낮고 떨렸다. 4일 오후 2시쯤 서울 노원구 탈북자 마을 아파트의 거실. 휴대전화로 들려오는 김희정(북한 국경도시 거주·40대)씨의 목소리는 그랬다. 함경도 접경지역 북한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두만강변 야산. 눈은 녹지 않았고 날씨는 추웠다. 집에서 한 시간여 걸어나온 김씨는 좌우를 살핀 뒤 화교 브로커의 휴대전화로 남한 친척의 번호를 눌렀다. 중국 휴대전화로 남한 탈북자와 통화한 함흥 주민이 공개 총살됐다는 보도가 있은 당일 오후, 북한발 휴대전화 전파는 여전히 중국 중계탑을 거쳐 서울 안방을 넘나들었다. 기자는 오래 알고 지낸 탈북자 도윤희(36·여)씨의 도움으로 함경도 국경에 사는 올케와 통화했다. 기자는 ‘아는 사람’으로 소개됐다. (탈북자의 이름은 요청에 따라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약속시간. 휴대전화에 번호가 뜨자 “알았다”고 답한 도씨는 함경도에 있는 중국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기자가 전화를 건네 받은 뒤 “올케가 떨고 있다”고 하기까지 20여 분간 통화 내용은 이랬다.

-어디서 전화합니까.(마을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물은 것이다.)
“먼 데 있습니다. 한 40분 걸어 나왔단 말입니다.”

-단속이 심한가요. 탐지기가 있다면서요.
“에, 예. 걸린다 말입니다. 잡혀간 사람도 있다 말입니다.”

-먹고사는 형편은 어떤가요
“굶지 않슴다. 그러나 바쁘다 말입니다. 에, 밥도 세 끼 거저 먹는 사람도 있고, 못 먹는 사람도 있고.”

-못 먹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요.
“거저 자기 노력에 달렸슴다. 힘들게 작업하고 농사하면 먹고.”

-곡물생산이 부족해 굶어죽은 사람이 많다는데.
“예 좀 어려운 사람이 있슴다.”

-함흥이나 단천 같은 데는 어떤가요.
“그쪽도 바쁨니다 에. 굶어죽는 사람도 좀 있슴다.”

-죽는 사람 본 적은 있나요.
“글쎄, 뭐. 본다고 그 무슨…그저 소문에 사망했다….”

-꽃제비들도 많다면서요.
“예….”

-역 같은데 나가면 많이 보인다는데.
“에이, 그런 것 없슴다.”

-시장이 열리나요.
“예….”

-화폐개혁 때 못 열게 했다는데.
“아. 합니다. 그런 것은 없고. 게서 상품이 값이 좀 올라가고, 적게 나옵니다. 아직은….”(상품이 적다는 뜻)

-쌀값은 어떤가요.
“올라갔슴다. ㎏당 1000원, (화폐개혁 직후엔 ㎏당 20원) 그저 300원, 200원, 500원 그렇게 올라갑니다. 한 달 전엔 500원…. 옥수수도 올라갑니다. 200원, 250원.”

-달러도 쓰나요.
“에 에, 다 씁니다. 내렸다 올랐다 한다 말임다. (환율이) 500원 정도 한다 말입니다(공식 환율은 140원).”

-나라에서 못 쓰게 했다는데.
“그래도 씁니다.”

-검열도 나옵니까.
“나 그런데는 잘 모릅니다. 그래도 나옵니다.”

-한 달에 얼마나 있어야 잘살 수 있습니까.
“누구 말마따나 100달러쯤은 됩니다.”
김씨는 갑자기 “다시 합시다”라고 말한 뒤 서두르듯 끊었다. 통화는 한참 뒤 연결됐다.

-통화가 겁이 납니까.
“아이, 사람들이 있어서…. 검열도 하고 그래서 그리 못한다 말입니다.”

-김정일 위원장 건강은 어떻습니까.
“일 없습니다.”
전화가 후다닥 끊겼다. 전화를 다시 걸어본 시누이는 “올케가 겁이나 덜덜 떨고 있다”고 했다.

북한과 남한의 휴대전화 통화가 일상화됐다. 1만8000여 탈북자들은 북의 가족과 편하진 않지만 자주 통화한다. 탈북자 한성희(50·여)씨는 “1만 명이 한 달에 한 번만 전화 건다 해도 하루 최소 300명은 된다는 얘기”라고 했다. 10만으로 추정되는 중국 내 탈북자들도 한다.

초기 탈북자들은 중국에 가서 북한 가족과 조심스레 통화했다. 그러다 남한에서 직접 전화하기 시작했다. 국제전화카드로 공중전화를 이용해 중국 휴대전화로 북한의 가족과 통화했다. 한씨는 “처음엔 걸릴까 걱정돼 공중전화를 썼지만 주위가 시끄러워 집 전화를 쓰다 지금은 아무 전화나 맘대로 쓴다”며 “남한 어디서든 북의 가족과 통화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도 공중전화를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사용되는 중국 휴대전화는 대개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조교(조선족 교포)와 화교 장사꾼들 것이다. 그들은 브로커로 일한다. 한씨는 “화교 브로커망이 대단하다. 거짓말도 안 하고 비밀을 아주 잘 지킨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걸린 북한 주민은 중형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씨는 “친척이 2008년 보위부에 딱 걸렸었다. 보위부가 집 대문을 열려 해 휴대전화를 바깥 하수구로 버렸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받은 사람의 이름과 ‘010-’으로 시작되는 남한 번호가 감지됐다고 다그쳤다. 도 보위부로 끌려갔다가 뇌물을 주고 풀려났다”고 했다.

그러나 장사꾼·무역업자들의 ‘강타기’, 즉 압록강·두만강을 통한 밀수나 나진·선봉 특구를 통한 밀수도 많아 주민 개인이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강을 건넌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 주민들은 깊숙이 숨겨놨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통화한다. 통화는 돈과 결합돼 있다. 탈북자 임모(30)씨는 “북의 부모님에게 석 달에 한 번 50만~60만원, 아주 가끔 100만원을 보내는데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통화한다”며 “손녀도 북의 할머니와 전화한다”고 했다.

울 손녀는 북한 할머니와 전화
남북 통화는 대개 다단계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서울의 임씨가 어머니에게 1000달러를 보낸다고 보자. 먼저 중국의 조선족 브로커 A씨에게 전화를 걸고 지정받은 중국 은행으로 송금한 뒤 받을 사람의 인적 사항을 알려준다. A씨는 이를 확인한 뒤 북의 화교 브로커에 전화해 필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화교는 어머니를 직접 찾거나 찾아오게 해 전해준다. 수수료는 보내는 돈의 20~30%. 전화요금은 별도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가족끼리 약속이 만들어져 과정이 단축된다. 임씨는 “이론적으론 5분 만에도 북의 가족에게 송금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개는 며칠 걸린다. 별도의 사례를 들어보자.

3일 오후 3시45분 동대문 사무실에 있는 탈북자 이상숙(52)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001-86-133-으로 시작하는 국제전화. 북한 ○○시에 사는 친구 김영혜씨였다. 이씨는 “그래” 하고 짧게 말한 뒤 끊고 국제전화카드를 꺼내 사무실 전화로 통화했다. 당초엔 5일 동안 브로커와 조율해 오전 11시로 약속이 잡혔었다. 그래서 늦은 전화에 한마디 톡 쏜 다음 대화가 시작됐다.

-왜 11시에 못 걸었나.
“(낮은 목소리로) 집에 조사 나왔다 말이야. 도 보위부가 검열 나왔어. △△(두만강변 마을)에서 두 가족인데 10명이 강을 넘다 잡혔는데 보위부가 수색하고 뒤집어서 발칵 난리다 말이야.”

이씨는 급히 본론으로 들어가 돈을 받았는지 확인한 다음 재통화 약속도 하고 가족얘기도 했다. 한참 그러다 북한 사정으로 들어갔다.

-달러가 지금 어떤가.
“한 달러에 500원이다. 화폐개혁 다음에 돈이 물이 됐다.”

-쌀값은 어떤가.
“청진엔 ㎏당 1400원이다. 연선(국경)에선 800~900원 한다. 옥수수는 600원이다.”(김씨는 “지난달엔 200원이었다”고 했다.)

-어마마. 왜 이렇게 비싸네.
“현물이 없는데 어떡하겠는가. 청진엔 두 끼 먹는 사람이 태반이고 굶어죽는 사람도 있다. 역전에는 꽃제비가 많다. 올겨울은 추워 노인들이 길거리에서 많이 얼어죽었다더라.”

-그러면 TV라도 팔아먹으라마.
“내놔도 사자는 사람도 없다. 불도 안 오는데 뉘기 본다고 사겠나. 전기 불 안 펴도 된다. 먹을 거래도 줬음 좋겠다.”

-김정일 썩어지라(죽으라는 뜻).
“그랬음 좋겠지만 그런 말 말라 탐지기에 걸린다. 전화 놓겠다. 큰일 난다.”

-영혜야 도청된다는 거 다 거짓말이다.
“이름 부르고 큰소리 말라. 다 도청된다. 그런 말하면 전화 끈다.”

갑자기 전화가 꺼졌다. 남쪽 이씨가 긴장했다. 다행히 이씨의 국제전화카드 돈이 모자라 그런 것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돈·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했다. 그 사이 이씨는 ‘재주’를 피웠다. 친구가 “원산 사는 희자(여)가 ‘아바이한테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해서 생긴 일이다. 희자의 아버지는 탈북해 서울에 산다. 동대문의 이씨는 휴대전화로 서울 ‘아바이’를 찾고, 함경도의 영혜는 빛 전화기(무선 전화기)로 원산 희자에 걸었다. 남쪽의 이씨와 북쪽의 영혜씨는 두 개의 전화기를 양쪽 귀에 대고 대화를 중계했다. 소위 ‘맞전화’. 그렇게 원산 딸과 서울 아버지는 남북 원격 통화를 했다.

그러나 북한 모든 곳에서 중국 휴대전화가 통하진 않는다. 국경 중국기지국의 출력은 이론적으론 160㎞까지 미치지만 바다같이 장애물이 없는 곳에서나 가능한 얘기고 국경의 산악 지역에선 최대 60㎞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국경으로 몰려 통화를 하고 돈을 받아 돌아간다. 그래서 이씨는 “돈이 모이는 함경도·양강도·자강도는 이미 남한 경제권”이라고 했다. 살기 어려워 떠났던 탈북자들이 이젠 돈을 보내 오히려 잘살게 된 셈이다. 이씨는 “적으면 100만원, 많으면 200만~300만원씩 보내는데 자주 보내다 보니까 100만원을 돈으로 생각 안 한다. 아주 달라졌다”며 “이젠 ‘집사겠다’ ‘무슨 일이 있다’ ‘그냥 돈이 필요하다’며 전화 온다”고 했다.

진짜 고급 정보는 휴대전화론 모자라
다만 국경서 먼 지역으로 돈을 보내거나 통화를 하려면 어려움이 크고 시간도 더 걸린다. 국경으로 사람을 데려오거나 갖다 주려면 시간과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황해도로 돈을 보내려면 수수료가 원금의 70%까지 된다. 그 과정에서 브로커를 잘못 만나면 사기도 당하고 떼먹히기도 한다.

한편으로 중국 휴대전화는 탈북자 정보 네트워크를 만든다. 휴대전화로 생활 정보와 정책 정보가 나온다. 화폐개혁에 관한 첩보도 미리 나왔고 이후 엉망으로 치닫는 상황에 관한 정보도 나왔다. 도윤희씨는 “한 여성 탈북자는 3000달러를 청진 부모님에게 보냈는데 부모님들이 다 인민폐로 바꾼 다음날 화폐개혁이 되자 돈을 몽땅 나라에 바쳤다고 했다”며 “딸은 그 돈이 어떻게 마련한 돈인데 바쳤느냐고 전화로 원망했다”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 ‘발걸음’도 휴대전화를 통해 나왔다. 노동당원 출신으로 평양에 살았던 탈북자 하현우씨는 “발걸음의 첫 첩보는 탈북자의 휴대전화 통화로 나왔다”며 “탈북자 중엔 지원을 받으며 매일 북한과 통화해 정보를 받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북한 주민들은 강연·학습 등을 받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내부 정보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 정보 관계자는 “탈북자들의 휴대전화 통화가 북한 주민의 삶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되지만 진짜 고급 정보는 적다”며 “그런 것은 휴대전화를 넘어 존재한다”고 했다.

두만강·압록강을 끼고 ‘정보 장사’가 활발하다. 한 정보 관계자는 “북한의 국경수비대나 무역 일꾼들이 문서를 가져 나와 중국의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파는데 비싸게는 1만 달러도 부른다”며 “100달러 선에서 해결되는 것도 많다”고 했다. 서울의 한 북한 소식통은 “국가정보원도 중요한 사진이나 문서는 1000달러, 동화상은 2000달러 정도를 준다”고 했다. 경찰은 500~700달러로 좀 싸다. 탈북자 이상숙씨는 “외국 정보 기관이나 언론사도 열심이다. 일본 언론도 사진·동영상·자료를 많이 산다”며 “값은 잘 모르지만 많은 돈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고 했다.

북한 고위 간부들도 정보 장사에 동원된다. 하현우씨는 “도당의 경우 책임 비서나 주위 일부를 제외하면 다 돈에 약하다고 보면 된다. 평양에도 그런 간부가 많다”며 “돈을 쓰면 중국 휴대전화를 이용해 북한 사정을 빠르게 알 수 있다”고 했다. 국정원이 지난달 23일 “김정일 위원장이 초조감을 많이 피력하고 있다”고 국회정보위에 보고한 것도 이런 네트워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4분이면 통화 감청된다” 선전

북, 접경지대 휴대전화 물결에 골머리

북한 당국은 중국 휴대전화와 전쟁 중이다. 1월 중순 보위부가 중국 휴대전화로 남한과 연락한 자를 색출해 총살하라는 내부 지시를 내렸고 2월 1일 인민 보안성 포고령은 ‘민족반역죄로 다스린다’는 엄포를 놨다는 얘기도 있다. 함북 무산·회령에서 휴대전화를 갖고 있던 수백 명의 젊은이가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소문도 나왔다. 기자와 통화한 북한 주민, 탈북자와 통화한 북한 주민 모두 감청된다고 겁을 냈다.

북한엔 강력한 소문이 돌아다닌다. 독일산 감지 차량이 돌아다니거나 중국제 전파 탐지기가 곳곳에 박혀 있어 통화를 감청하고 녹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화가 부쩍 줄었고, 전에는 한 시간씩도 했었는데 지금은 10분도 못한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러나 한국 최고 이동통신사의 전문가는 “도청과 녹취는 현대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했다.

감지 차량과 관련해 서울 거주 탈북자 이상희씨와 북한 국경의 ○○시에 사는 김영희씨는 탐지된다고 확신했다. 이씨는 “독일제 감지차가 돌아다니며 휴대전화 통화를 4분30초 내에 감청하고 녹음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통사의 전문가는 “방탐 차량을 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차량 지붕엔 360도 회전하는 옴니 안테나가 있다. 스펙트럼 분석기로 어느 방향에서 신호가 뜨는지 살핀다. 잡힌 신호를 기준으로 그 방향으로 진행하면 신호가 커지는 원리를 이용해 감지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기지국처럼 고정 장소에서 큰 파워를 내야 잡힌다. 이 전문가는 “그러나 개인 휴대전화는 출력이 너무 약해 아주 근거리가 아니면 신호 자체가 뜨지 않는다”고 했다. 감시 차량이 옆으로 지나가도 신호가 아주 약하게 떴다 사라지기 때문에 그게 뭔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휴대전화가 고정 장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움직여도 감지할 수 없어 휴대전화 통화를 감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감지가 불가능해 도청이나 녹음은 아예 할 수 없다. 중국의 휴대전화 방식이 CDMA·WCDMA 외에 TDMA 같은 구식도 쓰지만 그에 관계없이 디지털은 도청이나 녹음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과거 카폰 통화는 주파수를 찾아 녹음하는 게 가능했다”며 “휴대전화의 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에 사용하는 암호코드는 이론적으론 해독할 수 있다지만 이는 수퍼컴퓨터가 동원돼도 며칠은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그런 장비가 차량에 장치돼 돌아다니며 감지하고 도청하고 녹취한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으며 따라서 그는 “북한 당국이 통제용으로 얘기를 꾸며내는 것 같다”고 했다.

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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