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교안보팀 쇄신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북 공조방안을 논의했던 한.미 정상회담은 우리 외교.안보팀의 안이한 정세판단과 대처로 양국간에 불협화음을 노출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의 국익은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 전통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북한과의 화해.협력정책 추진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의 정책은 이를 거스르는 듯해서 우려의 소리가 높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한.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찬하지만 국내외 평가는 인색하다. "한.미 양국간에 심각한 불화의 위험성이 느껴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논평에서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이) 면전에서 金대통령의 뺨을 때린 격" (셀리그 해리슨 미국 우드로 윌슨 선임연구원)이라는 모욕적인 진단까지 나와 우리의 우려와 분노를 아울러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은 이래도 저래도 망할 정권이지만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해야 한다는 투로 말하는 등 부시는 물론 그 안보팀의 대북정책과 북한에 대한 인식은 우리를 실망시키기에 족하다.

金대통령 방미 전에 사전 정지차 연이어 방미했던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과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이 도대체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정부가 이렇게 된 근본원인을 찾아 올바른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관계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국면으로 빠져 또다른 '불편한 관계' 의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자국 우선 세계전략과 우리의 대북정책이 서로 충돌하는 것도 한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상외교가 어긋난 근본원인은 이미 지적했듯 정부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깊게 내다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외교.안보팀은 정권 교체기의 대미 설득노력을 소홀하게 했을 뿐 아니라 부시 정부도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설 하에 엉뚱한 정책판단과 안이한 대처로 국익이 손상됐음을 자성해야 한다.

金대통령이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의 유지.강화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합의했다가 미국에서는 이를 뒤집는 듯한 발언을 해 이중으로 나라의 체면이 깎이게 됐다.

또 정부는 얼마 전까지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선언 또는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한다고 공언했다.

이에 미국측이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와 연결해 우리 정부의 진의를 탐문해 오자 정상회담 이후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없고 남북 기본합의서에 기초한 긴장완화 방안을 집중 논의하기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민감한 함의(含意)를 지닌 정책을 한반도 정세와 종합해 검토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이런 안이하고 무능한 외교.안보팀에 우리의 대북정책과 국익 수호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