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0조원도 충분치 않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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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벌써부터 추가 조성된 40조원의 공적자금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어이가 없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박승(朴昇) 민간위원장은 "추가 조성된 40조원은 충분치 않다" 고 말했으며, 또 정부는 부실 종합금융사를 묶은 하나로종금의 자산 부족분이 당초 추정보다 5천억원이나 더 많아 그만큼의 공적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朴위원장은 "새로 조성하기보다 가급적 회수한 돈을 순환시켜 사용하겠다" 고 밝히고 있고, 정부도 하나로종금의 부족분은 40조원 내에서 다른 곳에서 남는 돈을 전용해 충당할 방침이라고 한다.

朴위원장과 정부의 이런 '변명' 은 일리가 있다. 공적자금 잔액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데다 소요 규모는 주식시장과 금융기관의 수익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만큼 공적자금의 과부족 논의는 시기상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공적자금 부족 운운에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는 것은 그럴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어서다.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현대그룹이 망할 경우 추가 조성은 불가피하며, 공적자금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도 여전히 안이한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에서다.

공적자금 추가 조성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우리는 2차 공적자금 조성 당시 부실에 대한 정확한 실사를 촉구했었다.

그래야만 왜 40조원이 필요한지, 이 정도면 금융기관을 충분히 정상화할 수 있는지 등의 청사진이 나온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정확한 실사를 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로종금의 추가적인 자산부족 같은 문제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정부는 투입자금의 회수 극대화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회수된 자금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만일 현대그룹의 도산으로 정말 어쩔 수 없이 공적자금 추가 조성이 불가피하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분명히 진 후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장관이 바뀌어서' 또는 '대우사태 같은 예상 외의 일이 터져서' 라는 식으로 어물어물 넘어가선 절대로 안된다.

어제부터 시작된 감사원의 공적자금 감사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 국회의 국정조사와 청문회는 반드시 재개돼야 하지만 정부 부처와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 등 98곳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최근에 일어난 제일은행의 스톡옵션을 둘러싼 해프닝은 정부의 공적자금 관리가 얼마나 엉망이었던가를 방증하는 사례다.

감사원은 이러한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따져야 함은 물론, 공적자금 조성.투입의 적정성 여부 등 정부의 정책적 실패와 부실채권 은폐 등의 불법.탈법 문제, '동아건설은 죽이고 현대는 살리는' 정책의 비일관성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감사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감사 없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만 주로 밝혀낸다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감사원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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