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 성직자와 경찰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말 안듣고 말썽 피우기 좋아하는 아이를 다룰 때 부모는 때로 성직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 경찰관이 되기도 한다. 설득과 훈계로 달래도 보고, 때로는 회초리를 들고 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아이에 따라 설득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지만 매가 더 잘 통하는 경우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두 가지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스스로 성직자가 될지, 아니면 경찰관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문제아를 둔 부모의 공통된 고민이다.

북한이라는 문제아를 다루는 데 있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프리스트(priest)' 의 입장을 취한 반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캅(cop)' 의 입장에 섰다는 비유가 눈길을 끈다.

"부시 대통령이 경찰관 같다면 金대통령은 성직자 같다. "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차기 주한 미 대사 물망에도 오르내리고 있는 더글러스 팔 아시아.태평양 정책연구소장의 말이다.

경찰관이 북한이라는 '깡패' 를 무장해제시켜 거리에서 끌어내기를 원하고 있다면 성직자는 먹을 것도 주고 입을 것도 주면서 감화.회개시켜 딴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金대통령과 텍사스 주지사 출신으로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 차림을 좋아하는 부시 대통령의 어울리는 역할 분담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엊그제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에 대한 현격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金대통령은 북한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있고, 실제로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며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시각에 회의적이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이를 확인하기 전에는 북한의 변화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깡패국가(rogue state)' 를 개입을 통해 정상적인 국가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한.미간에 이견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성직자와 경찰관 중 어느 쪽 입장을 택하느냐에 따라 동원하는 방법은 크게 달라진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부시 행정부는 설득과 회유보다 단속과 처벌에 무게를 두는 경찰관의 입장에 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깡패를 다루는 경찰관에게는 무기가 필요하다. 국가미사일방위(NMD)체계라는 새로운 무기를 갖추기 위해서는 깡패의 존재가 계속 필요하다고 경찰관이 믿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배명복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