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아버지의 한숨 속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기의 명작 '최후의 만찬' 앞에 서면 숨이 막힌다. 그 마지막 순간에도 의연하고 당당한 예수님의 모습에 압도된다. 해뜨는 아침 석굴암 대불을 올려다보노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런 순간들엔 비록 심장이 없다 하더라도 그 장려함에 고개를 들 수 없다. 합장 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또 한편, 박물관 뒤뜰에 아무렇게나 팽개친 듯한 초라하고 못생긴 부처님도 난 좋다. 아니 더 좋다. 야위고 찢긴 예수상, 어느 이름 없는 작가의 손에 다듬어진 그림.조각돌이 더 정겹고 애정이 간다.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보다 그 쪽이 더 부처스럽고 예수답다. 더 애착이 가고 가까이 느껴진다.

난 그래서 웅장한 대웅전이나 교회보다는 작은 암자나 단칸 개척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싶다. 거기서 더 경건하고 진실된 기도가 될 것 같아서다.

종교적 심성이 대단치도 못한 내가 이런 거창한 생각을 하게 된 건 엊그제 신문의 조각기사 때문이다. '철부지 짓이려니' 하고 넘어가기엔 세속적인 물량주의에 빠진 우리 현실이 너무 딱하고 아프다. 중학에 진학한 아이가 학교 앞, 아버지 노점상이 창피하다고 행패를 부린 것이다. 밤중에 가판대를 부수고 아버지에게 죽으라고 대들었다. 얼마나 소란을 부렸으면 경찰까지 출동했을까.

괘씸한 녀석! 하지만 다음 순간, 난 이 아이를 더 이상 꾸짖을 수 없는 내 자신을 의식하곤 참담한 심경이 되었다. 어린 마음에 그럴 수도 있겠다. 친구들 아버지는 사장도, 회장도 많다. 자가용으로 등교하는 아이가 한둘인가. 달동네 셋방에서 리어카를 끌고 행상을 나서는 아버지의 행색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친구들이 볼까 두렵고 창피하다. 기가 죽고 위축이 된다.

가슴을 내밀고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한 아버지.아들이 많은 세상이다. 축복받을 일이다. 르네상스 이후 세계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간상을 구가하고 있다. 초기의 초라한 모습에서 당당한 예수상으로 바뀌어 간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위대함을 칭송해 온 것이 지금까지 풍미해온 세계적 풍조였다. 자연파괴도 서슴지 않았다. 방자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냉철히 생각해보자. 인간이란 존재가 과연 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한가. 인간이란 사실을 부끄러이 생각하고 때론 겸손이란 이름으로 고개를 숙인다는 게 그리도 마이너스일까. 이런 감각도 있어 좋지 않을까. 인간이 초라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런대로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당당한 아버지가 많은 세상에 문제아가 많아지고 있는 건 또 무슨 사연일까. 방자한 아이, 무례하고 이기적인 아이, 나약한 아이, 마약에 빠지는 아이, 문제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러고 보면 사회적으로 당당한 아버지만이 해법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생각하노라면 더욱 그렇다. 행상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괜찮은 아버지셨다. 축 처진 어깨, 지친 귀가길, 멀건 죽 한그릇에 저녁을 때우곤 아… 신음하듯 한숨과 함께 벌렁 쓰러지는 아버지, 여윈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혹은 조심스레 밟노라면 천장을 올려다 내뱉는 아버지의 짙은 한숨을 몇번이고 아프게 들어야 했다.

돌아 누우며 끙끙 앓는 소리에 윗목에서 바느질하는 어머니가 가끔 곁눈질한다.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도 한 그런 시선이었지만, 그때 엄마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사이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싸우진 않았느냐, 공부는 잘 하느냐, 의례적인 그런 질문조차 받아 본 적이 없다. 대단한 교훈이나 훈계란 것도 물론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초라한 행색, 여윈 몸, 끙끙 앓는 소리, 깊은 한숨, 거기엔 천근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우린 그 속에서 깊은 인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삶이라는 명제가 거기에 녹아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산다는 게 뭔지, 가치관.인생관, 우리 시대 아버지는 그 깊은 한숨으로 많은 걸 가르쳤다.

나도 자라면서 책도 읽고 좋은 스승도 만났다. 훌륭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강의도 하고 글줄도 쓴다. 하지만 아버지의 초췌하고 야윈 한숨만큼 교훈적인 게 내겐 없었다. 훈화.대화를 아무리 한들, 당당히 자신있게 살라고 교육을 한들, 이게 아이들에게 얼마나 전달될까. 평소의 생활 속에 부모를 지켜보면서 아이들 스스로 읽어내야 한다. 이보다 더 소중한 유산은 없다.

"넌 오늘밤 어디서 무슨 기도를 하려느냐. " 행패를 부린 그 철부지에게 묻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