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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천재’ 선택한 포스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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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9월 중순 경북 포항의 POSTECH(포스텍· 옛 포항공대)에는 경기도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남학생의 수시모집 지원 서류가 접수됐다. POSTECH은 2010학년도 입시에서 정원 300명 모두를 입학사정관제로 뽑았다.

이 학생은 내신 전 과목이 1등급일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다. 하지만 지원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던 입학사정관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 학생을 ‘골치 아픈 천재’로 평가한 교사추천서 때문이었다. ‘머리는 좋아 천재형이지만 성격이 삐뚤어져 있다’ ‘어려운 문제를 들고 와 일부러 골탕 먹이는 등 교사를 못살게 군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생활기록부에는 ‘이기적이다’는 표현까지 있었다. 입학사정관들은 이 학생을 뽑아야 할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성적이 좋으니까 뽑아야 한다”는 주장과 “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했다. 결국 2시간여의 회의 끝에 탈락시키기로 결정했다. 한 입학사정관은 “해당 고교에 직접 전화까지 했는데 1학년 담임교사가 비슷한 말을 하더라”며 “오죽하면 교사가 추천서에 저렇게 썼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POSTECH은 전원 기숙 생활을 하는데 남을 배려하는 소양이 없으면 곤란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입학사정관 심사를 거친 1단계 결과는 승인권을 가진 교무위원회로 올라갔다. 입학위원을 겸하는 교수가 회의에서 1차 전형에서 있었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학생의 탈락 건이 소개되자 교수 사이에선 ‘골치 아픈 천재’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다. 한 교수는 “우리도 학교 다닐 때 엉뚱한 점이 많아 여러모로 교사들을 골치 아프게 하지 않았느냐”고까지 말했다. 결국 교무위는 1차 전형 결과를 뒤집어 해당 학생에게 2차 면접 기회를 주기로 했다.

입학사정관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앞으로 입학위원회의 결정을 교무위가 번복하면 다시는 입학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우여곡절 끝에 1차를 통과하게 된 이 학생은 2단계 전형의 잠재력 평가면접과 수학·과학 심층면접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면접 당시 자신의 성격적인 부족함에 대해서도 “고치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지난해 11월 6일 최종 합격했다.

POSTECH의 김무환 입학처장은 “4년 동안 이 학생의 발전 정도를 지켜보면 추후 유사한 학생을 뽑을지 말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처장은 “고교 교사의 학생에 대한 평가와 대학 측의 시각이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라며 “올해 입시에서 전국 4년제 대학이 전체 모집 인원의 9.9%를 뽑을 정도로 확대되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단순히 서류로만 판단하기보다는 다각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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