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는 5일 안전진단자문위원회를 열고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대해 조건부 재건축 결정을 내렸다. 조건부 재건축은 해당 건물이 노후·불량 건축물에 해당돼 재건축할 수 있지만 붕괴 우려 같은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은 없어 구청장이 주택 시장 상황을 봐서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은마아파트는 올 하반기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뒤 조합 설립 인가, 사업 시행 인가, 이주·철거 등의 재건축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강맹훈 강남구 도시관리국장은 “재건축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16년께 새 아파트에 주민들이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424가구의 대단지인 은마아파트는 규모나 입지 면에서 강남권 중층(10~15층) 재건축 단지의 대장주 역할을 하는 곳이다. 2002· 2003·2005년에도 재건축을 시도했으나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해 정밀 안전진단을 받았다. 참여정부가 강남권 재건축을 억제하기 위해 조건을 까다롭게 만든 이후 강남권에선 이제까지 한 건도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했다. 현 정부가 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50%에서 40%로 낮춤에 따라 은마아파트가 처음 문턱을 넘은 것이다.
그러나 안전진단 통과가 재건축의 사업성이나 투자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재건축 절차상의 큰 문턱을 보다 쉽게 넘을 수 있다는 뜻이지 돈을 더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 비율)이나 재건축 기간 등의 조건이 주택 시장 움직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대치동 청실아파트는 259%의 용적률을 적용받았고 논현동 경복아파트는 300% 이하로 재건축을 추진한다. 용적률이 높을수록 일반분양 가구 수가 늘어나 조합원의 수익이 높아지는 것이다. 안전진단 통과 이후에도 조합원 4분의 3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는 조합 설립 인가 등의 절차도 기다린다.
이 때문인지 주택 시장 반응은 거의 없다. 은마아파트 단지 내 상가의 한 공인중개사는 “사려는 수요자도 없고 매물을 내놓는 사람도 거의 없다”며 “안전진단 통과가 이미 가격에 많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102㎡형의 경우 안전진단 통과 기대감 등으로 지난해 공시가격이 22.8% 뛰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집값 안정세로 재건축 투자수익에 대한 기대감이 줄었고 대출 규제 등으로 주택 매수 심리가 위축돼 있는 상황”이라며 “ 단기적으로 재건축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주택 시장을 흔들 가능성은 있다. 강남권 주택 공급 확대의 유일한 수단이 재건축이므로 수요를 끌어들일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또 안전진단 통과 단지가 잇따르면서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활성화되면 매매 시장도 활기를 띨 수 있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강남권에 진입하려는 대기 매수세가 많으므로 경기가 풀려 시장 상황이 호전되면 재건축 단지에 매수세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장정훈·함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