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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도착 30분 이내 수술 시작 … 휴일도 없이 24시간 맞교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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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흉부외과 의사는 한때 ‘의료계의 꽃’으로 불렸다. 생명과 직접 관계가 있는 심장·폐를 다루는 데다, 고난도의 수술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기피 1순위가 됐다. 10년 이상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런 후배들을 보면서 묵묵히 수술실을 24시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송석원(38)·이기종(39) 교수. 교수로 구성된 유일한 흉부외과 응급시스템이다. 이들에겐 흉부외과 기피는 먼 나라 얘기다.

지난달 9일 오전 4시30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송석원 교수의 비상용 휴대전화가 급하게 울렸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 담당 의사가 대동맥 박리증(심장에서 나오는 대동맥이 찢어지는 질병)이 의심되는 66세 여자 환자를 보내겠다는 전화였다.

“혈압이 180/90㎜Hg, 맥박이 1분에 90회를 넘는 환자가 얼마 후 응급실로 올 겁니다. 극심한 통증 탓에 지금은 혈압이 올랐지만 곧 출혈이 심해지면서 쇼크 상태에 빠질 상황이라 한시라도 빨리 응급 수술을 해야 합니다.“

송 교수는 이기종 교수, 마취과 남상범 교수, 중환자실, 수술실, 심폐 체외순환사 등에게 긴급 전화를 하며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오전 6시에 응급실로 환자가 실려왔고 20분 뒤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은 정오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대동맥 박리증 환자는 한 시간 지날 때마다 사망률이 1%포인트 증가한다. 발병 후 이틀이면 50%가 사망한다. 신속한 응급 수술이 유일한 살 길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송석원 교수(왼쪽)와 이기종 교수(왼쪽에서 둘째)가 수술 전에 환자 상태에 관한 기록지를 점검하면서 수술 계획을 의논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송 교수와 이 교수는 하루씩 맞교대 당직을 선다. 이들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 후 30분 이내에 수술실에서 마취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교수 당직 시스템이 없는 다른 병원은 환자 도착 후 서너 시간은 족히 지나 수술을 시작한다.

두 교수는 2008년 7월 환자들이 제때 수술을 못 받아 숨지는 상황을 그냥 볼 수 없어 응급시스템을 구축했다. 365일 내내 병원을 지킨다.

“내과는 못 고치는 병이 많고, 피부과는 사람이 죽고 사는 데가 아닌데 흉부외과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분야입니다.”

두 교수의 흉부외과 지원 동기다.

“흉부외과가 3D 업종이라면 우리는 3D 중의 3D를 선택한 셈이죠. 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를 살릴 때 보람과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두 교수는 지난해 39명의 대동맥 박리증 환자를 수술했고 2명(사망률 5.1%, 일반적으로 20~30%)이 숨졌다. 지방 병원은 물론 서울의 다른 대학병원에서 대동맥 박리 의심 환자를 보낸다. 두 사람은 평소에는 심장수술 등 다른 종류의 흉부외과 수술을 한다. 인턴-레지던트(전공의)-전임의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됐지만 생활 패턴은 인턴과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사생활은 거의 없다.

이 교수는 지난해 성탄절에 오랜만에 부모·형제가 모였을 때 응급 환자가 들어오는 바람에 집에 못 갔다고 한다. 송 교수는 “지난해 생일 때 아이들과 파티를 하기로 약속했지만 응급수술 때문에 약속을 못 지켰다”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송 교수는 “대동맥 박리증은 주로 고혈압 환자에게 발생하는데 노인 인구가 늘면서 앞으로 환자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생명을 구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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