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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정년 퇴임한 하종현씨 "예술은 평생 달리는 마라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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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이제는 그림만 그릴 겁니다. 가르치는 일이나 이런 저런 사회적 활동에서 벗어나 전업작가가 되는 거지요. "

지난달 28일 홍익대 회화과에서 정년퇴임한 서양화단의 중진 하종현(65)교수는 "무거운 외투를 벗고 새출발하는 기분" 이라며 "그동안 못가본 남미나 아프리카에도 여행해 볼 계획" 이라고 말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홍익대 미대 학장,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 회장 등을 지낸 하교수는 한국 추상미술을 선도해 온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정년퇴임을 맞아 연 회고전(서울 정동 조선일보미술관.3일까지)은 그가 평생을 추구해온 실험과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선 해방 이후의 앵포르멜(비정형 추상)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거쳐 철조망이나 용수철을 풀어서 캔버스에 붙인 반입체 작품, 그리고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접합' 시리즈 등 50점을 보여준다.

특히 '접합' 연작은 다양한 변주를 거치면서 20년째 계속되고 있다. 올이 성긴 마대의 뒷면에서 앞면으로 밀어낸 물감을 손이나 도구로 형상화하는 독특한 기법이다. 그는 "작위가 드러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찾다 보니 재료도 마대와 물감으로 단순화됐다. 재료를 써서 인위적으로 뭘 만든다기보다 작가의 행위가 재료와 일체화한다는 뜻" 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지난해 파리에서 선보인 접합 시리즈 전시회에 대해 "르 피가로.리베라시옹 등의 신문에서 '재료나 기법의 해석방법이 서양과 전혀 다르다. 그러면서 오늘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고 대서특필한 기억이 난다" 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번 회고전을 열어준 후학들은 2백30쪽 분량의 기념도록도 함께 헌정했다.

하교수는 이에 화답하듯 퇴직금 2억3천만원을 기금으로 후배작가들을 위한 '하종현 미술상' 을 만들기로 했다. 그는 "1975년에 공간미술대상을 받았을 때 상금 2백만원을 무척 요긴하게 쓴 기억이 있다" 면서 "미술상은 매년 1천만원 정도의 상금이 주어질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하교수는 99년 일산 호수공원 근처로 이사, 처음으로 자신의 문패를 단 작업실(60평)을 마련했다. 추상미술을 선도해 온 그는 "내 작품은 미술관에서는 대개 소장하고 있지만 대중성이 없어 개인들에게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면서 "그동안 셋방 작업실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그 때문" 이라고 말했다.

하교수는 젊은 제자들을 위해 "예술은 일생을 두고 하는 장거리 경주와 같은 것" 이라며 "성급하게 결과를 얻으려고 서두르지 말라" 고 조언했다. 서둘러 완성되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한 많은 방황이 필요하다는 뜻에서다.

조현욱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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