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침해 단속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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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자랑하는 가톨릭이 최근 정통 교리와 신앙생활을 잠식하는 이상 징후의 단속에 나섰다.

지난달 서울대교구 강우일 주교가 각종 '기(氣)수련' 문화에 대한 주의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수원교구 최덕기 주교가 '치유(治癒)기도' 의 변질에 대해 경고하는 '치유기도 지침서' 등 공문을 소속 교회에 배포했다.

기수련이란 각종 기공이나 단전호흡 등을 말하며, 치유기도란 병든 사람의 치유를 기원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가톨릭에서 이들을 문제시하는 것은 최근 일부 성직자나 평신도들 사이에서 건강이나 기도라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신앙생활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심취하는 경우가 속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수련의 경우 건강 차원에서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기수련을 계속하다 자칫하면 기를 우주만물의 근원으로 받아들이거나 이를 통해 개인적 구원을 추구하는 식으로 '신앙화'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부와 차단된 수도원 등에서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는 일부 수도자들 중에 기수련에 심취한 사람들이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발간된 '가톨릭 신자의 의식조사보고서' 에 따르면 평신도의 경우 13.3%가 "단전호흡이나 기공수련을 경험한 적이 있다" 고 응답했다.

강주교는 교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그 어떤 기술적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데도 일부 기수련 단체에서 수련을 통해 스스로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 라며 "묵상이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기수련 문화와 관계를 맺었던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신앙생활에 혼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분별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 고 경고했다.

'치유기도' 역시 하느님께 감사하고 기원하는 차원을 넘어서 기복신앙적 성격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조상들에게 기도하는 '가계치유기도' 가 대표적인 사례며, 일부에서는 앞날을 예언하거나 특별한 치유 능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달 한 수도원 청년모임에 참여하던 신자들 중 일부가 한꺼번에 가톨릭교리를 전면 부정하고 나가 자신들만의 교회를 만든 사건까지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종교학자 장석만씨는 "가톨릭은 토착화 과정에서 개신교보다 훨씬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전통적인 정신문화에 열려 있는 편이다.

따라서 동양적 전통사상에 기초한 기수련이나 조상숭배의식이 가미된 가계치유기도도 개신교도보다 가톨릭 신자들이 쉽게 받아들인다" 며 "최근 이같은 경향은 보편적 가치보다 개인적 이해에 집착하는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인데, 가톨릭뿐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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