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해체까지 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대법원이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를 비롯한 법원 내 단체에 대한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이동근 대법원 공보관은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우리법연구회·민사판례연구회 등의 현황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옴에 따라 모임의 수와 회원 구성, 활동 내용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보관은 그러나 “앞으로의 조치나 방향에 대해선 정해진 게 없고 특정 모임이나 단체를 겨냥한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는 각 연구회·학회 등에 회원 명단과 논문발표 여부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실태 조사가 끝나는 대로 대법원이 우리법연구회 등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 고위관계자는 “현황 파악 대상에 우리법연구회 등이 포함돼 있는 것일 뿐 특정 모임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리겠다는 식의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한나라당의 ‘법원 내 사조직’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앞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난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에게 “우리법연구회의 명단이나 활동 상황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연구회 가이드라인 마련 움직임=현재 법원 내에서는 우리법연구회와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민사판례연구회와 형사판례연구회를 비롯해 헌법학회·노동법학회·형사소송법학회 등의 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개수와 가입 인원 등은 분명치 않다. 최소 10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대법원 내부에서는 이번 조사를 계기로 연구회 활동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연구회·학회 활동이 판사들의 자율에 맡겨지면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일부 모임에는 판사들은 물론 교수와 변호사 등 외부 인사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또 기업이 ‘법인 회원’으로 등록한 경우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담당 판사와 같은 모임에 소속된 변호사가 변론에 나서거나 법인 회원이 원고나 피고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번 기회에 명확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단은 조사 자체가 우리법연구회 등의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간 침묵을 지켜온 이용훈 대법원장이 최근 신임 법관 임용식에서 “상식에 안 맞는 독단을 법관의 양심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고 제시한 것도 이런 분석에 무게를 더한다.

한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2일 오후 “연구회를 해체하지 않으면 법관재임용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하니, 그 주장에 따르려면 연구회를 포기하든 법관을 포기하든 해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내용의 트위터 메시지를 올렸다. 문 부장은 통화에서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언에 대한 심경을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