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들 북한 상권 장악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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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한 당국은 1992년 주민들이 음성적으로 갖고 있던 화폐를 회수해 산업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어요. 보유현금을 모두 신고하게 한 후 구화폐에 대해 가구당 3백99원99전만 교환해 주고 나머지는 채권을 발행했죠. 이때 강계시에 신고된 구화폐 총액의 20%인 4백만원이 한명의 화교(華僑)에게서 나와 화제가 됐었죠. "

북한 화교들의 경제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탈북자의 증언이다.

북한이 조심스레 개방의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이 틈새를 비집고 화교들이 북한 상권을 장악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미 80년대 후반 평양 창광거리에는 화교들이 운영하는 청요리집과 향만두집이 등장했고, 대동강변 옥류교 식당가에도 자장면.우동을 파는 중국집이 생겨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평양 문수거리는 '화교 거리' 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화교들이 모여 산다. 이들은 음식장사와 물품거래를 통해 북한주민들의 주머니돈을 긁어 모으고 있다.

마치 60~70년대 소위 '자장면' 장사를 통해 쏠쏠히 재미를 본 한국사회 화교들을 연상케 한다.

'화교는 어디 가나 돈 버는 재주를 발휘한다' 는 말이 북한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는 아닌 것이다.

화교들이 북한에서 경제적 지위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 중국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후다.

당시 북.중 국경지대에 대거 모여 살던 이들은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틈타 중국산 저가 공산품을 비롯해 생필품.의류.곡물류 등을 북한에 들여와 이를 북한산 수산물.목재.한약재 등과 맞바꿔 이익을 챙겼다.

화교들은 비교적 외국 나들이가 자유로운 장점을 십분 발휘, 중국으로부터 각종 공산품을 들여와 활발하게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산 물품은 북한 암시장의 주요 인기품목으로 부상, 이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화교들은 그동안 축적한 자금력을 동원해 평양 거주권을 암거래로 하나 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화교들의 평양 진출이 본격화한 것이다.

원래 농산물 시장이었던 평양의 송신 장마당이 냉장고.TV.전자 손목시계 등 중국산 공산품으로 넘쳐난 것도 이때부터다.

특히 화교들은 90년대 북한주민들이 심각한 경제난으로 생필품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자 이 틈을 이용, 탄탄한 재력을 쌓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 91년 발행된 '조선화교사' 에 따르면 북한 화교는 약 6만명으로 남한에 거주하는 약 2만명의 화교에 비해 세배 정도 된다. 이들의 95% 이상이 산둥(山東)성 출신이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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